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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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귀연 판사가 1인당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나오는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을 마셨고, 한 번도 그 판사가 돈을 낸 적이 없다는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합니까?"

5월 14일 국회 법사위, 민주당 김용민이 법원행정처장 천대엽에게 했던 질문이다. 정치에 관심이 좀 있는 이라면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올 것이 왔구나. 지 판사의 평소 처신이 부적절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좌파의 특징은 보복에는 자비를 두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 지귀연이 좌파에게 찍혔으니 조만간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얘기다.

대통령 탄핵정국에서 이재명이 가장 당황했을 때가 언제인지 혹시 아는가? 법원의 구속취소 인용으로 윤통이 풀려난 3월 7일이다. 당시 넋이 나간 이재명은 ‘의원총회 끝나고 얘기하겠다’며 회의장으로 갔는데, 구속취소를 결정한 판사가 바로 지귀연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이재명은 검찰만 탓했다. "검찰이 초보적 산수를 잘못했다고 해서 윤석열 대통령이 헌정질서를 파괴했다는 명백한 사실이 없어지진 않는다." 하지만 민주당 백브리핑에서 구속취소가 헌재의 탄핵심판에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고 강조한 걸 보면, 그들은 법원 결정으로 인해 윤통이 탄핵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가졌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법원을 비난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3월 26일, 이재명의 공직선거법 항소심이 잡혀 있었기 때문이었을 터였다.

이제 항소심 재판 판결이 났고, 이재명을 또다시 놀라게 한 대법원 판결도 지나갔다. 그에게 다행스러운 건 이제 대선 전까지 자신에 대한 재판이 더이상 없다는 것, 바야흐로 법원을 손봐줄 시간이 온 것이다. 대법원을 건드리면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에, 첫 번째 대상은 보다 만만한 지귀연으로 정해졌다. 그가 윤통 내란사건의 1심 재판장인 것까지 고려하면, 이보다 더 적합한 대상은 없을 터였다. 폭로내용이 좀 치졸해도 상관없다. 일단 터뜨리면 좌파언론과 지지자들이 알아서 욕해줄 테니 말이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재명의 쌍방울 대북송금을 수사한 박상용 검사를 탄핵할 때 ‘술에 취해 검찰청 청사 내에 변을 봤다’는 걸 이유로 들었으며, 박성재 법무장관의 탄핵소추 사유에는 ‘야당 대표를 노려봐서 국회를 무시했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이런 거야 털면 다 나오기 마련, 마침 지 판사에 대해선 그럴듯한 제보가 있었다.

4월 17일 김어준 방송에 나온 홍사훈 기자와 노영희 변호사는 ‘아직 확인이 안됐지만 해괴한 설들이 돌아다닌다’며 지귀연의 룸살롱 접대 이야기를 한다. "술을 너무 좋아해가지고 밤을 사랑해가지고 그 술을 좋아하고 밤을 사랑하는 바람에 생기는 실수들이 있다." "제가 아는 친한 판검사님들하고 서초동에서 제가 정해놓고 다닌 룸살롱이 있었어요…도대체 그 술값을 누가 내겠어요."

김용민이 이 얘기를 국회에서 터뜨린 건 그로부터 한 달 후, 지들도 찌라시라고 하는 걸 그대로 공개한 걸 보면 지귀연에게 다른 비리를 찾지 못한 모양이다. 그가 이 의혹을 부인하자 민주당은 지귀연이 다른 두 명과 어깨동무를 한 채 해당 업소에 앉아있는 사진을 공개해 버렸다!

하지만 민주당 하는 일이 다 그런 것처럼, 이 폭로 또한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첫째, 일단 해당 업소는 룸살롱이 아닌, 단란주점이다. 원칙상 유흥종사자를 고용할 수 없다는 뜻. 김어준 방송에 나온 노영희도 ‘앉아가지고 언니들하고 그냥 얘기하면서 술 마시는 그 정도 스몰토크 하는 그런 정도’라고 한 걸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곳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다. 둘째, 판사가 접대받는 자리에서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는다? 사진에서 느껴지듯 그 자리는 접대가 아닌, 그냥 친한 이들끼리의 모임으로 보인다. 셋째, "당이 확보한 사진 촬영 시점은 지난해 8월경으로 확인됐다." 이때는 윤통이 탄핵되기도 전, 그런데 민주당은 마치 지귀연이 접대를 받고 구속취소를 해준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사정이 이럼에도 민주당이 이게 무슨 대단한 비리인 양 사건을 키우는 것은 망신주기가 목적이라서다.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 듯해서, 그가 계속 판사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하지만 더큰 걱정은 다음이다. 이런 사태로 보건대 만일 이재명이 당선된다면, 그때도 판사들이 좌파 인사에 대한 판결을 소신껏 할 수 있을까? 최소한 난, 그럴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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