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이호영 선교사(아프리카 우간다)

이호영 선교사(아프리카 우간다)는 오랜 세월, 척박한 땅 우간다에서 놀라운 사역을 감당해 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또다시 순종해 오는 9월에는 18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한국에서의 사역은 외국인 유학생을 포함한 우리나라 다음 세대를 위한 전도에 비전을 품고 있다. 이 선교사를 만나 그의 사역에 대해 들었다. (편집자주)

이호영 선교사는 오랜 세월, 척박한 땅 우간다에서 놀라운 사역을 감당해 왔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또다시 순종해 오는 9월에는 18년 만에 다시 우리나라로 돌아온다. /이호영 선교사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사로 간 계기가 궁금합니다.

"20대, 신학교에 다닐 때부터 선교의 비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역하는 교회에서 놓아주지를 않았습니다. 2002년 네팔로 떠나려고도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의 허락을 받아 지난 2007년 젊은이 사역을 위해 우간다로 떠나게 됐습니다. 사모 그리고 어린 자녀(당시 2세, 4세, 5세, 9세)들과 함께 온 가족이 우간다로 떠났습니다."

-우간다 도착 후 어려움도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도착 후 문화와 언어 등이 달라서 적응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인도로 우간다 국립대학교 채플에서 젊은이 사역을 시작했으며, 아내인 이숙이 선교사는 외국인 기독교 국제학교에서 행정직으로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때는 우간다 수도 캄팔라에 있을 때입니다. 감사한 것은 이숙이 선교사의 학교 사역으로 자녀들이 장학금을 받고 국제학교에 다닐 수 있었습니다."

-우간다 방송 선교로 큰 발자국을 남겼다고 들었습니다.

"우간다에서도 더 열악한 땅인 골리 지역은 전기 시설도 없고 우물도 없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현지 목사가 다음 세대를 위해 골리로 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순간 아이들 교육이 걱정됐습니다. 그러던 중 2010년 어느 날 강력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선교사로 왔느냐’는 주님의 물음 앞에 두 손을 들고 안주하려던 마음을 버리고 순종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 교단 소속으로 들어가서 청년국 국장으로서 50여 개 초등학교와 중, 고교 방문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이곳은 라디오밖에 없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게 라디오 사역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양동유 전 교수를 만나 라디오 방송 송출기를 기증받게 됐습니다. 그때 양 교수님은 은퇴하고 방송 장비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던 중 2022년에 젊은 집사님의 후원으로 방송사 사옥을 건축했으며, 미국 ‘소망의 소리’ 미디어 그룹에서 실사 후 고성능 방송 송출기를 기증해 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200만 명이 청취하는 방송국으로 성장을 했습니다. 하루 17시간을 방송합니다.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 그리고 현지어인 알루어입니다. 그리고 2024년 12월에 저는 12년 동안 성장한 방송국의 재정권과 인사권을 현지인들에게 이양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제 우리나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모든 것이 안정적이었지만 또다시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려고 합니다. 두렵고, 자신이 없지만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이호영 선교사가 예수기쁨교회에서 선교 보고 후 축도를 하고 있다. /박병득 기자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사역을 감당하려고 계획 중인가요?

"오는 9월 무렵에 우리나라로 돌아와서 외국인 유학생과 다음 세대를 위한 사역을 하려고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와 있는 석, 박사과정 유학생이 16만 명이 됩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에서는 엘리트요, 상위계층입니다. 그들을 제자 훈련을 시켜서 자기 나라로 돌아갈 때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하려고 합니다. 즉 글로벌 유학생 선교사역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깜짝 놀라는 것은 제가 우리나라를 떠날 때인 18년 전과 완전히 다른 것 중 하나는 다음 세대가 우리나라 교회에서 사라졌다는 답답한 현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헌신을 하려고 합니다. 비전을 이뤄나가겠습니다. 그들은 우리나라 내에 미전도 종족입니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