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조기 대선 실시가 결정되면서 경제계의 한숨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 중 압도적 1위의 지지율을 보이는 데다가 정권 교체 여론이 정권 유지 여론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경제신문이 지난달 말 리얼미터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선 집권 세력 선호도를 묻는 질문에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라는 답이 57.1%,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이라는 답이 37.8%를 차지했다. 정당 지지율은 민주당 47.3%, 국민의힘 36.1%로 나타났다.
경제계는 정권이 교체될 경우 민주당이 집요하게 추진해 온 반(反)기업 입법을 막을 방법이 사라질 것을 우려한다. 그간에는 윤 전 대통령이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경제부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반기업 법안이 무산되었으나 정권이 교체된다면 사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8일 경제계의 한 관계자는 "만일 이재명 정권이 들어선다면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거칠 게 없어질 것이고,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의 반대로 입법에 성공하지 못한 반기업 법안들을 즉각 발의하여 시행할 게 분명한데 기업들로서는 기댈 언덕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이어 "반기업 정서가 강한 사회 분위기나 민노총 등의 요구로 기업에 대한 규제가 더 강화되는 반면 반도체 기업 연구직 등 특정 부문의 주 52시간 근로 예외 인정이나 최저임금 차등적용 등 경제계가 바라는 개혁은 소외될 가능성이 커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제계가 우려하는 대표적인 법안은 상법 개정안과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 등이다.
민주당이 추진해 온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인 주주들이 제각각의 입장에서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 기업들이 장기적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고, 외국 헤지펀드 심지어 국내 행동주의 펀드 등의 공격으로 경영권이 위협받을 소지가 크다는 게 경제계의 우려다. 기업 투자가 줄어들면 자연히 부가가치 및 고용이 위축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노란봉투법’은 불법파업 조장법이라 불릴 정도로 경제계에는 경계 대상이다. 이 법안의 주요 내용은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원청업체의 책임을 강화하고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는 동시에 파업 근로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 등이다.
경제계는 이 법이 시행되면 파업이 성행하고 그로 인한 생산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한국의 임금 근로자 1만 명당 파업 건수는 2010년 0.05건에서 2023년 0.1건으로 두 배가 됐지만, 같은 기간 일본은 0.02건에서 0.01건으로 줄었다. 2013~2022년 10년간 근로자 1000명당 파업에 따른 근로 손실일수도 일본은 0.2일에 그친 반면 한국은 176배에 이르는 35.2일에 달했다.
그로 인한 노동생산성 하락도 심각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엄격한 법치 시행으로 불법파업이 줄긴 했지만,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2023년 기준 51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37개 국가 중 26위에 머물렀다.
경제계가 시한폭탄으로 여기는 또 하나는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이다. 증인 동행명령 범위를 ‘국정감사·국정조사’에서 ‘중요한 안건 심사 및 청문회’로 확대하고, 영업비밀보호를 이유로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할 수 없도록 한 게 개정안의 핵심이다. 이 법안이 시행되면 영업 비밀과 핵심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그뿐 아니라 이 법은 국회의원이 무소불위의 힘으로 기업인들을 압박할 흉기로 둔갑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기업활동을 옥죄는 환경이 기업들의 한국 탈출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은 경제계뿐 아니라 학계에서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있는데 정치가 그걸 부추기면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경고가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