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집중투표제+감사위원 분리 선출
1400만 소액주주 표 노린 ‘표플리즘’

이사회 난장판 되고 기업은 투기자본 먹잇감 될 가능성
이러면 누가 투자하나...일자리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22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배임·성남FC 뇌물’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

재계가 떨고 있다. 조기 대선가도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반기업 색채가 더 강한 상법 개정안 추진을 공약으로 내놓았기 때문이다.

22일 재계는 이 전 대표의 상법 개정 공약이 현실화했을 시 파장을 놓고 술렁였다. 이 전 대표는 전날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를 찾아 주식시장 활성화 공약을 발표하며 "주주 이익 보호를 위한 상법 개정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전 대표는 21일 오전 페이스북에서 상법 개정 재추진 방침을 밝히며 "소액주주를 대표하는 이사도 선임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하고 감사위원 분리 선출도 단계적으로 확대해 경영 감시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했다가 정부의 거부권 행사와 재표결 끝에 폐기된 기존 상법 개정안에는 들어 있지 않은 내용이다.

폐기된 기존 상법 개정안의 골자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확대한 것인데, 이 전 대표가 기존 개정안에 더하여 반기업·반시장적 요소를 추가한 새로운 개정안 추진을 공식화한 것이다.

이에 재계가 기업 경영권 위협을 우려하자 이 전 대표는 "이기적 소수의 반항", "힘 있는 특정 소수의 저항"이라고 일축했다. 대주주와 소액주주를 갈라치기한 것이다.

이 전 대표는 이날 "대한민국 주식투자자가 1400만 명을 넘어섰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수의 대주주보다는 압도적 다수의 소액주주 표를 의식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내용의 기존 상법 개정안에 재계가 반대하고 정부가 거부권을 발동한 건 이해관계가 천차만별인 주주들이 서로 다른 요구와 주장을 하며 자신의 요구에 어긋날 때 소송을 제기하면 이사회가 장기적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전 대표는 여기에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을 추가한 것이다.

집중투표제는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의결권을 선임하는 이사 수만큼 부여하는 제도다. 주주들이 뭉쳐 부여받은 의결권을 한 명의 이사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들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하기 유리한 제도다. 이는 투표에서 1인 1표와 같은 ‘1주 1 의결권’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래서 현재는 각 기업 주주총회의 자율적 결정에 도입 여부를 맡기고 있으나 이를 의무화하도록 법제화하겠다는 것이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은 이사와 별도로 감사를 선출하되 역시 소액주주들의 몰아주기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는데, 현재 1인의 감사 선출에서 더 확대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에 따르면 집중투표제 강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이사 선임 과정에서 특정 주주 간 파벌 싸움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이 꼽힌다. 주주들은 자신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이사를 선출해야 할 유인이 크고, 선출된 이사 역시 회사 발전보다 자신을 선임해준 특정 주주들의 편을 들어 주는 것이 자신의 연임 전략에 유리하게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격 미달의 이사가 선임되거나 주주 간 파벌 싸움 과정에서 기업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가능성도 있다.

한경협은 기업가 정신 위축 우려도 제기한다. 자본 기여도가 낮은 특정 주주가 집중투표제를 통해 회사 경영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는 반면, 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출자한 대주주는 오히려 영향력이 축소되기 때문이다. 결국 대규모 자금 투자를 통한 기업경영의 유인이 사라지게 되면서 투자자의 외면을 초래할 수 있다.

투자가 위축되면 새로운 기업 탄생이 어려워지고, 기존 기업도 성장하기 어렵다. 일자리도 사라진다. 기업이 투기자본의 먹잇감으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2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이재명 후보는 본인을 ‘휴먼 개미’라고 표현했지만 실상 그의 경제 공약을 살펴보면 개미투자자를 몰살시킬 ‘개미핥기’임이 확실하다"며 "자본시장법이라는 대안에도 정략적 이유로 상법 개정안을 다시 밀어 붙이겠다고 한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상훈 정책위의장도 "경기 침체를 넘어 후퇴까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상법 개정안을 재추진하는 것은 자신의 말을 스스로 배신하는 것이며, 기업과 성장에 대한 이 후보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 후보가 정말 대통령 후보로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면 국가의 부를 기업이 창출한다는 자신의 말에 맞게 상법 개정안 재추진 의사를 철회하고 국민의힘이 제안한 자본시장법 개정안부터 차근차근 협의할 것을 촉구하는 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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