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7일 대선일에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제안을 두고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은 내란 종식이 먼저"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 당장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막는 것이 훨씬 더 긴급하고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이 대표가 우 의장의 4년 중임제 개헌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풀이했다. 주 의원은 이날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이 대표는 마치 대통령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인 듯 처신한다"며 "이 대표는 지난 민주당 당 대표 선거 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임기 1년을 포기하고 4년 중임제 개헌을 하려 했다"고 말한 사실이 있음을 지적했다. 이 대표가 4년 중임제 개헌을 반대하는 것은 당선될 게 뻔하다고 여기는 판에 임기 1년을 포기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다.
친명계 의원들도 이 대표를 거들고 나섰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서 "벌써 개헌이니 내각제니 난리"라며 "윤석열 파면이 엊그제고, 아직 관저 퇴거도 안 한 상태인데 국민이 공감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단 탄핵 뒷수습과 내란 세력 발본색원, 민생·경제 회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도 "헌법 개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에는 공감하지만, 지금 개헌이 최우선 과제인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지금 국가적인 최우선 과제는 내란 진상을 철저히 규명해 그 책임을 묻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청래 의원도 "우 의장의 충심은 이해한다. 개헌은 당위적으로 맞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은 내란 종식에 총단결·총집중하고 매진할 때다. 개헌으로 시선 분산할 때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인영 의원 역시 "지금은 개헌 논의할 때가 아니다. 불가능하다. 대선을 앞두고 개헌 논의를 잘못하면 계엄과 탄핵으로 이어진 민의를 왜곡한다"고 말했다.
한결같이 개헌 추진으로 이 대표 당선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정치권 일각은 대표와 민주당의 이런 반응을 개헌 압박이 대선에서 이 대표를 위협하는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근거로 본다.
그런 점에서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개헌에 동의한 것이 일리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권 비대위원장은 7일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반영하는 개헌안을 마련해 대통령 선거일에 함께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1987년 개헌 당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제왕적 국회가 출현했다"며 "거대 야당이 등장해서 입법·예산·인사 전반을 통제하고 여소야대 구조가 고착화된다면 대통령이 아니라 국회가 황제가 된다"고 말했다.
권 비대위원장의 말이 아니라도 그간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 민주당의 횡포와 폭주를 두고 ‘다수의 폭정’을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은 꾸준히 있어 왔다. 전원책 변호사가 대표적이다.
전원책 변호사는 성문법으로 규정한 사항이 없더라도 오랜 경험에서 비롯된 전통과 관례의 확립, 그에 따른 타협 또는 협치가 없는 정치에서는 다수의 폭정을 막을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다는 주장을 줄곧 펴왔다.
고성국 정치학 박사는 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배경과 국회의 탄핵 소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87 체제’ 헌법의 여러 가지 맹점이 드러난 이상 개헌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고 박사는 "엿장수 맘대로 재판하는 헌재를 해체하고 위헌 및 탄핵 심판을 대법원으로 이관하며, 탄핵 소추 즉시 직무가 정지되는 불합리를 없애고, 가장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대통령을 단기간에 단심으로 파면할 수 있는 지금의 구조를 바꾸어야 하며, 국회의원 주민소환제도 도입하는 내용으로 개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선거와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의 동시 실시가 절차와 시간으로 볼 때 한계가 있긴 하지만 개헌을 통해 87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