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폭탄’에 따른 글로벌 무역전쟁 심화 우려 속에 7일(현지시간) 아시아 주요 주가지수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 증권시장 폭락에 아랑곳하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로 볼 때 당분간 반등의 계기를 찾기 쉽지 않다는 비관적 전망이 커지고 있다. 폭락장에서 손실을 줄이기 위한 투매가 이어지고 있어 아시아 증시 대폭락에 이어 월요일 개장하는 뉴욕증시에 ‘블랙 먼데이’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날 코스피는 4.31% 하락 개장해 5.57% 급락으로 마감했다. 오전 9시 12분 코스피200선물지수의 급변동으로 인해 사이드카(side car·5분간 프로그램 매매 중단)가 발동되기도 했다. 지난해 8월 5일 ‘블랙먼데이’ 이후 8개월 만이다.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915억원이 넘는 순매도를 기록했고, 코스피200선물도 1조1819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일본 닛케이225 평균주가는 장이 열리자 마자 8.27% 폭락했으나, 7.68% 하락으로 마감했다. 홍콩 항셍지수는 13.01%나 떨어졌다. 대만 자취안지수(TAIEX)는 개장과 동시에 2만선이 무너진 뒤 9.79% 하락으로 마쳤다. 자취안지수가 2만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작년 8월 5일(1만9830.88) 이후 8개월 만이다. 중국 상하이지수는 4.46% 하락 개장한 뒤 하락 폭이 7.22%로 커지기도 했다. 중국 선전지수 역시 5.96% 하락 출발해 한 때 8.88%까지 떨어졌다.
호주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S&P/ASX200 지수도 장중 6.5% 하락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충격으로 주식시장이 크게 타격을 받은 2020년 3월 이후 최대 낙폭이다.
이날 오전 미국 증시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선물(-4.27%)과 나스닥 100 선물(-5.50%),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 선물(-3.56%) 등도 급락했다. 선물시장 개장 초반 S&P 500과 나스닥 100 선물은 5% 넘게 떨어졌고, 다우존스 선물은 한 때 1705포인트(-4.3%) 하락했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글로벌 증시 대폭락이 과거 역대급 폭락장과 비견될 만한 위기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이웅찬 iM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블랙먼데이는 비교 대상이 아니다. 이번은 당시 위기를 넘어섰다"며 "대공황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인 만큼 2008년 금융위기와 비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확산하면서 미국 뉴욕증시에서 4일(현지시간) 다우존스30 산업평균지수(-5.50%)를 비롯해 S&P 500 지수(-5.97%), 나스닥 종합지수(-5.82%) 등이 일제히 5% 넘게 떨어졌다. S&P 500 지수는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2020년 3월 16일(-12%) 이후 5년 만에 일간 기준 최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S&P 500 상장종목들은 3∼4일 2거래일 동안 시가총액이 5조3800억 달러(약 7862조원) 증발했다.지난 3일부터 이틀간 뉴욕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으로 6조6000억 달러(9690조원)가 증발했다. 4일 종가 기준 국내 상장 ETF 960여종목의 순자산도 182조6000억원으로 전 거래일(3일) 186조9000억원 대비 4조3000억원 줄었다. 하지만 투매는 계속될 조짐이다.
달러 가치가 약세인 가운데 일본 엔화와 미국 국채 등 다른 안전자산으로 돈이 몰리고 있다. 유로화와 엔화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전장 대비 0.07 내린 102.846 정도다. 엔화 수요가 늘면서 엔·달러 환율은 전장 대비 1.240엔 내린 145.610엔에 거래 됐다. 시장금리의 벤치마크인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3.90% 수준이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 주간 거래 종가 대비 27.9원 오른 1462.0원으로 개장해 33.7원 오른 1467.8원으로 마감했다.
가상화폐도 상호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으로 6일 큰 폭의 하락세를 보였다. 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미 동부시간으로 이날 오후 4시 기준 비트코인 1개는 24시간 전보다 4.10% 내린 7만9548달러에 거래됐다. 앞서 이날 오후에 하루 전보다 4.99% 내린 7만8625달러를 찍기도 했다. 비트코인은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한 다음 날인 지난 3일부터 약세를 보이기 시작해 8만달러선을 넘나들다가 이날 가파르게 하락했다.
문제는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의 출구가 보이지 않아, 금융시장의 위기가 갈수록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6일 "대중국 무역 적자가 해결되지 않으면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정책 수정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졌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협상을 위해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할 가능성이 없다"고 말했다. 또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관세정책에 따라) 경기침체를 고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밝히는 등 고위 당국자들도 관세정책 방어에 나선 상황이다.
관세로 인한 기업 펀더멘털의 악화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증시가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통화정책이지만,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이 같은 기대에 부응할지 미지수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뉴욕 증시 폭락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도 불구하고, 고율 관세에 따른 물가 상승과 성장 둔화를 경고하며 통화정책 변화에 유보적 입장을 바꾸지 않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