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이 우주 자산의 제작과 운용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획기적인 기술 개발에 본격 나선다.
DARPA는 최근 칼텍, 일리노이대 어바나-샴페인 연구팀과 진행한 ‘노마드(NOM4D)’ 프로그램의 개념실증과 원천기술 개발을 완료하고 지구 궤도에서 시연하는 3단계 계획에 본격 돌입한다고 밝혔다.
노마드는 ‘혁신 궤도·달 제조, 재료, 질량 효율적 설계(Novel Orbital and Moon Manufacturing, Materials, and Mass-efficient Design)’의 약자로, 지구가 아닌 우주공간에서 견고하고 정밀한 대형 구조물을 조립·제작·건설하는 기술의 개발이 목표다. 당초 3단계는 2단계에서 개발한 원천기술을 실험실에서 정밀화·고도화하는 것이었지만 기술 성숙도가 높다고 판단한 DARPA가 이 단계를 건너뛰고 궤도 시연을 결정했다.
이에 칼텍은 민간우주기업 모멘텀(Momentus)과 2026년 2월 궤도 서비스 위성 ‘비고라이드(Vigoride)’를 발사해 지구 저궤도에서 구조물 조립기술의 성능과 신뢰성을 검증할 예정이다. 해당 시연은 인간의 개입 없이 비고라이드 스스로 자체 카메라를 이용해 복합소재 튜브를 조립, 직경 1.4m의 원형 구조물을 제작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DARPA의 노마드 프로그램 매니저인 앤드류 디토어 박사는 "시연에 성공한다면 미래에 매우 큰 우주 기반 구조물 건설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리노이대 팀의 경우 소재와 제조에 초점을 맞춰 고정밀 우주 복합재 형성 공정을 개발했다. 이는 부드러운 탄소 섬유에 액체 수지를 주입해 경화시키는 것으로, 다양한 구조물의 고강도 자재로 쓰일 수 있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실증은 2026년 4월 국제우주정거장(ISS)의 ‘비숍 에어락’ 모듈에서 진행된다.
시연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두 대학에 더해 플로리다대학 팀이 DARPA의 지원을 받아 우주에서의 구조물 제조시 필수 기술로 꼽히는 레이저 기반 판금 굽힘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DARPA는 노마드가 인류 우주개발의 게임체인저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우주 조립·건설이 현실화되면 우주 자산의 크기와 중량에 대한 물리적 제약이 사라지는 까닭이다.
실제 인공위성과 우주망원경, ISS, 화성 탐사선 등 인류가 지구 밖에서 운용 중인 모든 자산은 지구에서 만든 완성품을 로켓 발사체에 실어 쏘아올렸다. 하지만 발사체 성능의 한계로 인해 자산의 크기와 무게에 뚜렷한 제한이 있고, 발사 비용도 어마어마하다. ISS만 해도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10여년에 걸쳐 30개 이상의 모듈을 발사해 도킹했다.
즉 우주에서 직접 원재료를 가공·제작하고 조립했을 때 누릴 수 있는 메리트는 지대하다. 가장 먼저 크기 때문에 기존 방식으로는 발사 자체가 불가했던 초대형 위성, 우주 태양광 발전소, 거대 우주망원경, 우주 연료보급소 등의 프로젝트들이 가능해진다.
또한 막대한 비용 절감이 예상된다. 발사비는 물론 우주 자산의 제작비도 반감된다. 로켓 발사 시의 강력한 진동과 중력가속도를 견딜 강도를 갖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소재와 설계상의 허들 역시 사라진다.
특히 언젠가는 궤도에서 대형 우주선을 건조하는 세상을 목도할 수도 있다. SF 영화 ‘스타트렉’에 등장하는 도시 크기의 우주선 ‘엔터프라이즈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때의 화성 유인탐사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식량 부족을 걱정해야 하는 수년간의 목숨 건 사투가 아닌 모든 것이 풍족한 탐사여행이 될 것이다.
군사·산업적 파급력 역시 상당할 전망이다. 미 국방부만 해도 이 기술을 활용해 궤도에서 직접 군사위성을 제작하거나 고성능 레이더 및 통신 장비를 조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민간우주항공업계는 이 신흥 시장의 경제적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며 향후 수십 년 내에 1조달러 이상의 시장이 창출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존슨우주센터 브라이언 로버츠 선임 연구원은 "우주 건설은 단순한 공학적 도전이 아니라 비용 절감, 효율성 향상, 그리고 인류의 우주 확장을 위한 필수적인 기술"이라며 "우주에서 직접 구조물을 제작할 수 있다면 기존보다 구조물 건설의 효율성을 10배 이상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