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3년간의 전쟁을 끝낼 종전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푸틴(왼쪽부터) 러시아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
미국의 중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3년간의 전쟁을 끝낼 종전협상을 시작할 예정이다. 푸틴(왼쪽부터) 러시아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연합

미국의 주재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종전 협상이 본격 진행될 예정이어서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대한 국내 기업들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3년에 걸친 전쟁으로 파괴된 인프라 등을 복구하기 위해 총 9000억달러(약 1307조원)에 이르는 시장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일단 건설사와 건설기계, 에너지 분야 등이 직·간접적으로 수혜를 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동시에 전후 복구 사업 자체에 따른 리스크도 있어서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같이 제기된다.

13일 경제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종전으로 인한 최대 수혜 업종으로는 건설업과 건설기계가 우선 거론된다. 재건사업이 본격화하면 잔해를 치우고 교통망, 산업단지, 건물 등의 건설에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2023년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 참여를 모색하기 위해 파견한 재건협력단에 참여하는 등 일찌감치 현지 진출을 타진해왔다. 당시 현대건설이 우크라이나 보리스필 국제공항공사와 공항 재건사업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고, 삼성물산은 우크라이나 리비우시와 스마트시티 개발 협력 MOU를 체결했다.

건설사들은 공급망 안정화에 따라 원자잿값이 다소 진정될지 모른다는 기대도 내비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멘트 생산 원료 중 하나인 유연탄 가격이 급등하면서 시멘트와 레미콘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건설사 관계자는 "공사비가 최근 3년새 50% 이상 오르면서 수익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라며 "각종 자잿값 안정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재건과정에 필수적인 건설장비 제조업체도 수혜가 기대된다. HD현대그룹의 건설기계 중간 지주사인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전후 복구지원을 위해 긴밀히 협력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우크라이나측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HD현대인프라코어 등 산하 계열사는 우크라이나 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며 양사 합산 시장점유율 30% 수준에 달한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지난해 9월 키이우에 지사를 설립하고 현지 딜러망과 네트워크를 유지해왔다. 앞으로 단순한 건설장비 공급을 넘어 기술 교육, 인력 양성, 현지 맞춤형 솔루션 제공 등 포괄적 지원 체계 구축 논의를 통해 우크라이나 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유일하게 자산을 투자한 기업이라는 이점을 살려 재건사업에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기업도 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미콜라이우항 인근에 곡물터미널을 준공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은 현지 터미널 가동 정상화에 대비해 현지 영농기업을 접촉하며 종전에 대비한 추가 사업 기회를 보고 있다. 나아가 2023년 미콜라이우주와 모듈러 제조시설 설립을 위한 MOU를 체결하는 등 농업 분야 외에도 종전 후 국가 재건사업에 적극 참여하기 위한 포석을 놓고 있다.

재건에 필수적인 전선 및 전력기기 업계도 수혜가 예상되는 분야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인프라 투자에 전선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수주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쟁이 끝나면 글로벌 가격 상승의 요인이 됐던 에너지 분야 등에 대한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도 풀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전쟁으로 러시아산 나프타 사용이 사실상 막히면서 가격이 비교적 높은 중동산 나프타를 구입해야 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제재가 다소 완화될 경우 국제 유가도 하향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석유화학업은 생산원가 중 원료비가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유가에 따라 원가 경쟁력의 변동이 크다. 원유 기반인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주로 쓰는 국내 업계의 경우 나프타와 에탄의 가격 차이가 적은 저유가 상황에서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특성이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 시장에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종전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데다, 종전과 재건은 또 다른 문제라는 점에서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경우 막대한 재건 비용을 해외에 의존해야 하는 등 사업 추진과 관련된 불확실성과 리스크도 존재한다. 앞서 한화 건설 부문은 이라크 전쟁 이후 비스마야 신도시 공사를 2012년 시작했으나, 이라크 정부가 대금 지급을 미루면서 수천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 한화는 결국 2022년 공사를 포기하고 철수를 결정하면서 큰 손실을 봤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종전 이후 사업 기회가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자금 담보가 선행돼야 들어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으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았다는 점에서 재건 사업의 우선권도 유럽에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온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여러 리스크를 볼 때 기업이 개별적으로 진출하기는 어렵고 국가 차원에서 들어가 그 안에서 일정 몫을 나눠야 한다"며 "결국 정부가 얼만큼 지원하는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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