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 트럼프 2기 출범, 초유의 탄핵 정국이라는 복합위기를 만났다. 대기업, 중소기업, 자영업자 등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내년이 최악의 한 해가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경기 부진 장기화, 관세 인상 우려, 국정불안 등 악재가 겹치자 대기업은 내년 경영 시나리오 수정에 들어갔다. 대기업들은 탄핵정국이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통령 탄핵안 가결(14일),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안 가결(27일)로 이어지자 불확실성과 변동성 확대에 대비하고 있다.
기업들의 가장 큰 관심은 원·달러 환율 움직임이다.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 이후 처음 1480원을 넘어서면서 기업 수익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출 비중이 큰 기업에게 ‘강달러는 호재’라는 공식이 깨진 지 오래다. 최근 미국 현지 생산 거점 투자를 활발하게 하는 반도체, 배터리 등 업계는 강달러 추세가 장기화하면 투자 비용이 대폭 늘어날 수 있다.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는 철강, 정유, 석유화학, 식품 등의 업계도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으로 원가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관세 확대 우려도 큰 부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모든 수입품에 10∼20%의 보편적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관세가 늘어나면 수출로 살아가는 한국 기업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대기업은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다. 중소기업들은 환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해 8월 수출 중소기업 304개 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환리스크를 관리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기업이 전체의 49.3%를 차지했다.
특히 원자재를 해외에서 들여와 국내서 판매하는 중소기업들은 최근 환율 급등에 ‘직격탄’을 맞았다. 중소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대응하더라도 선물, 보험 등 환헤지(환 변동 위험 회피) 상품 활용을 통한 전략적인 대응 방안 보다 단가 조정이나 원가절감, 대금결제일 조정 등 간접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따라서 환율이 급변하면 고스란히 환 변동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지속되면 중소기업들이 당장 겪는 손해를 넘어 장기적으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환율 급등으로 원자재 확보에 어려움이 생기면 생산·납품에 장애가 발생해 거래처가 끊기거나 손해를 만회하기 위해 원가 절감, 투자 축소 등에 나서면서 제품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이 지난 9월 발표한 ‘중소기업 환율 리스크 분석 연구’에 따르면 제조 중소기업의 영업이익 측면에서 환리스크(환차손익)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25% 수준에 달한다. 원·달러 환율이 1% 상승하면 환차손은 약 0.3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영업자들은 이미 ‘한계 상황’을 맞았다. 올해 3분기(기말 기준) 현재 자영업자의 전체 금융기관 대출 잔액은 1064조400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는 2012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기록이다. 2분기 말(1060조1000억원)과 비교해 불과 3개월 사이 4조3000억원이나 더 불어났다.
이들은 금융권에서 1064조원 넘게 빌렸지만, 현재 18조원 이상의 원리금을 갚지 못하고 있다. 대출 잔액과 연체액 모두 통계 집계 이래 역대 최대 규모다. 정국 혼란이 길어져 소비 위축 현상이 더 심해지면, 빚 갚기를 포기하는 자영업자들이 더 빨리 불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