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식
김용식

대한민국 정치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소통’이다. 국민의힘은 당원 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당원들의 의견을 지도부와 정당에 적극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온라인 당원 게시판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대표 한동훈과 그의 가족이 익명으로 이 게시판에 당정 갈등을 부추기는 글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이에 대해 친한계 김종혁 최고위원은 "한동훈 대표는 그 게시판에 등록조차 하지 않았다"며 가능성을 일축했지만, 이러한 답변은 오히려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당원 게시판이라는 소통의 장조차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 당대표와 지도부라니, 그가 강조하던 ‘동료 시민’은 처음부터 국민의힘에 없었던 건 아닐까.

같은 친한계로 분류되는 6선 조경태 의원 발언은 이 문제의 본질을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당원이긴 하지만 당원 게시판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보통 국회의원들은 당원 게시판에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는 발언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다. 당원들 목소리를 듣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을 당과 지도부가 사실상 외면 방치해 왔음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기업들이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게시판을 활용한다. 작은 온라인 쇼핑몰 판매자도 마찬가지다. 유튜버나 스트리머는 구독자나 시청자들과의 실시간 소통을 통해 활동의 기준과 범위를 정하는 등 중요한 창구로 댓글 게시창을 활용한다. 애정이 담긴 목소리이기 때문에, 그만큼 피드백이 정확하기 때문일 것이다. 디지털 시대 온라인 소통은 이렇게 많은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방치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은 익명임을 악용해 서로를 헐뜯고 선동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어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당과 지도부가 과연 당원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마음이 있는지 의문이다. 당원들의 의견을 보고 싶지 않은 ‘배설물’로 취급한 것이 아니냐고 나무란다면 과한 것일까. 지도부는 소통의 중요성을 외치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소통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자신들조차 들어가지 않는 게시판을 열어두고는, 당원·국민과 소통한다며 시장통이나 찾아다니는 게 진정성이 있는가. 이런 모습이야말로 구태이며, 기만 아닐까.

이번 게시판 사건은 여당이 보여준 그동안의 선거 결과 그리고 당원과 국민, 유권자와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사건의 진상은 경찰조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 여당이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넘어간다면 그 대가는 앞으로의 선거와 지지율로 돌아올 것이다.

진정한 소통은 말이 아닌 작은 관심에서 나온다. 국민과 당원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작은 목소리조차 외면하지 말고,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소통하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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