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을 기다렸다...다시 시작된 피의 복수 '피보다 진한 감동'
리들리 스콧 감독이 24년 만에 ‘글래디에이터’ 후속작 ‘글래디에이터 2’를 들고 나타났다. ‘델마와 루이스’부터 ‘블레이드 러너’ ‘에일리언’ 등으로 팬덤을 형성했던 87세 노장 리들리 스콧이 아직 팔팔한 현역인 점이 고맙다. 게다가 전작 ‘나폴레옹’의 참패를 만회하기 위해 절치부심 내놓은 것이 ‘글래디에이터 2’인 만큼 공을 많이 들였다. 전 세계에서 한국 관객을 가장 먼저 만나러 오는 전설의 검투사를 미리 만나 본다.
◇ 검투사 막시무스의 ‘글래디에이터’
누구에게나 ‘인생 영화’가 있다. 2000년 개봉한 영화 ‘글래디에이터’를 꼽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줄거리는 잘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한스 짐머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주인공 막시무스가 밀밭을 걸으며 손으로 밀을 훑는 장면은 뇌리에 박혔을 거라 생각된다. 영화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며 수미상관을 이룬 이 장면은 나중에 여러 영화에서 오마주 되기도 했다.
‘글래디에이터’는 황제가 아들인 콤모두스(호아킨 파닉스) 대신 총애하는 부하 막시무스(러셀 크로)에게 황위를 물려주려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질투에 눈이 먼 콤모두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막시무스의 가족까지 처단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막시무스는 노예가 되고, 그를 눈여겨 본 전직 검투사 프록시모의 도움을 받아 검투사로 변신한다. 그리고 황제가 된 콤모두스와 대결하게 된다.
‘글래디에이터’는 눈을 뗄 수 없는 장대한 규모의 액션과 깊은 여운을 남기는 스토리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 5관왕에 올랐다. 끝까지 명예로운 결투를 벌이며 영웅으로 거듭나는 검투사 막시무스 역을 맡은 러셀 크로는 이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남자 배우로 자리 잡았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커리어에서도 대표작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 막시무스의 죽음 20년 후
‘글래디에이터 2’는 막시무스의 죽음 20여 년 후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콜로세움에서 로마의 운명을 건 결투를 벌이는 루시우스(폴 메스칼)의 이야기를 그린다. 루시우스가 노예에서 검투사로, 그리고 로마 제국의 운명을 짊어진 구원자로 성장해가는 서사가 펼쳐진다.
1편에서 막시무스가 가족을 잃은 복수를 하기 위해 콜로세움에서 황제와 싸웠다면, 루시우스는 로마군에 대한 복수를 하고자 한다. 둘 다 노예로 전락해 검투사가 되고, 검투사 프로모터의 도움을 받아 복수를 하게 된다는 플롯은 같다. 1편에서 막시무스의 죽음을 지켜보던 소년 루시우스가 2편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어린 시절 동경해왔던 검투사 막시무스가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각성하게 된다.
스콧 감독이 선택한 새로운 글래디에이터는 폴 메스칼이다. ‘로마시대 흉상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외모’라는 평을 들은 폴 메스칼은 "캐스팅이 확정되는 순간, 내 인생이 완전히 바뀌겠구나 싶었고 실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드라마 ‘노멀 피플’, 영화 ‘애프터썬’ 등에서 여리고 섬세한 연기를 해왔는데 이번에 완전 변신을 한 것이다. 이외에도 강렬한 아우라를 자아내는 페드로 파스칼, 덴젤 워싱턴, 전편에 이어 유일하게 연속 출연하는 코니 닐슨 등이 영화의 서사를 웅장하게 이끌어 간다.
◇ 콜로세움 안에서 펼쳐지는 해상 전투
영화는 그간의 노하우와 기술력이 응축되어 한층 생생하게 재현된 로마제국과 콜로세움, 발전한 전투 신과 검투사 액션 등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한다. 스콧 감독과 제작진은 결투가 펼쳐지는 무대이자 로마의 상징인 콜로세움을 실제 크기의 60%에 달하는 세트로 직접 지어 현장감을 극대화했다.
특히 콜로세움 안에서 펼쳐지는 거대 해상 전투 장면은 재현한 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로마시대 당시 실제 있었던 일로 나우마키아(Naumachia)라 불렸다. 해전을 즐기기 위해 로마에는 콜로세움에 물을 채우는 수로와 도시에서 사용하는 수로가 따로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투사가 코뿔소, 원숭이 등과 싸우는 장면도 나온다. 로마시대에는 동물과 싸우는 검투사들이 실제로 있었으며 이들을 베스티아리(Bestiarii)라고 불렀다. 스토리는 상상을 더했을지 몰라도 역사의 고증에 신경썼음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 전 세계 최초 한국 개봉
1편의 향수를 기억하는 이들과 새로운 세대의 궁금증이 더해져 흥행이 점쳐지는 가운데, 현재 반응은 제각각이다. 명작을 망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반, 세월이 흐른 만큼 잘 빚어진 CG로 로마시대를 다시 보고 싶다는 기대감이 반을 이룬다. ‘글래디에이터’의 세계관을 막시무스 하나로 잇고자 하는 제작진의 의도가 다분히 느껴지지만, 전작의 명성을 이어나갈 수 있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수 있다.
‘글래디에이터 2’는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11월 13일 개봉한다. 이어 15일 일본, 22일 북미권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현장에서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스콧은 두세 번의 테이크 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입을 모았다. 이에 스콧은 "배우는 할 수만 있다면 수십 번 다시 찍고 싶어한다. 하지만 감독의 일은 캐스팅을 잘하는 것이고, 그 일을 제대로 해냈다면 여러 번 찍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어 "배우들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불안한 상태에서 연기하는 첫 번째 테이크를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스콧은 40세에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 애플 광고를 비롯해 2500여 편이 넘는 광고를 찍었다. 광고는 30초~1분이다. 스콧은 그 스피드를 그대로 영화현장에 가져오고 있다.
지난 23일 개봉한 ‘베놈:라스트 댄스’도 한국에서 가장 먼저 공개됐고 누적 관객 수 79만 명을 돌파하고 있다. 브로드웨이 최고 뮤지컬 ‘위키드’를 영화화한 ‘위키드’도 11월 20일 한국에서 첫 스타트를 끊는다. 이런 블록버스터들이 왜 한국 시장에서 전 세계 최초 개봉을 할까. 일단 우리 영화 시장은 세계 4위권일 만큼 크다. 게다가 반응이 빨라 테스트 시장으로 좋다는 의견도 있다. 유니버설 픽처스 베로니카 콴 반덴버그 회장은 영화 ‘분노의 질주: 더 얼티메이트’ 개봉 당시 스페셜 레터를 통해 "글로벌 영화 시장의 흥행 출발점으로 대한민국 영화 시장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며 "한국은 박스오피스의 폭발적 흥행을 이끈 열쇠"라고 평했다. 영화에 관한 한 한국은 그 티켓파워를 인정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