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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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이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를 골자로 한 임대차 2법의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계약갱신청구권은 기존 2년이던 임대차 기간을 ‘2+2년’으로 늘려 4년 거주를 보장하는 것이고, 전월세상한제는 임대료 상승폭을 직전의 5%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다.

대통령실이 임대차 2법의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은 전세시장의 수요와 공급 논리를 왜곡시켜 전셋값 상승의 ‘주범’이 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임대차 2법이 4년치 가격 상승분을 한꺼번에 반영해 전셋값을 끌어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불똥’은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전세제도로 튀고 있다. 깡통전세는 물론 전세사기의 가능성 때문이다. 여기에 무자본 갭투자가 횡행하는 투기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세제도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셈이다.

깡통전세는 집주인이 주택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전세보증금을 다 돌려주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전세보증금과 부채인 주택담보대출의 합이 집값의 80%를 넘으면 깡통전세로 간주한다. 부동산 경기 침체기에 집값 하락으로 자연스럽게 깡통전세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애초 건축주, 임대인, 중개인 등이 짜고 세입자에게 시세보다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가로채는 전세사기도 잇따르고 있다.

하지만 임대차 2법 폐지는 입법 사항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관련법 도입의 ‘주역’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을 포함해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회 통과가 불투명하다. 아울러 임대차 2법이 시장에 어느 정도 안착한 상황에서 구체적 대안도 없이 폐지하면 오히려 혼란만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단순한 주택임대차제도를 넘어 주택을 매개로 한 개인 간 금융거래로 자리잡은 전세제도를 폐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3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0년 7월 31일 도입된 임대차 2법이 이달 말로 시행 4년을 맞는다. 이 때문에 법 시행일 이후 계약갱신청구권을 소진하고 시장에 신규로 나오는 물량이 쏟아지면 4년치 가격 상승분을 한꺼번에 받으려는 수요로 인해 전세시장이 더욱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하지만 세입자 입장에서는 임대료 상승폭이 5% 이내로 제한되면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는 시점만큼은 임대료 억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실거래가 분석 결과 지난 2021년 2분기 이후 올해 2분기까지 전세 갱신계약을 했을 때 전세보증금은 평균 5억4728만원으로 종전의 5억3325만원 대비 2.6%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쓴 계약은 전세보증금이 평균 5억4042만원에서 5억3870만원으로 0.3% 떨어졌다. 임대차 2법 도입 직후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계약은 임대료 상승폭이 5% 미만으로 제한된 데다 이후 전셋값 하락으로 지난해부터는 감액 갱신계약이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전세시장에 미칠 임대차 2법의 영향이 과장됐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최근 전셋값이 아파트를 중심으로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를 임대차 2법의 영향이라고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과 빌라 전세 기피, 그리고 시장금리 하락에 따른 전세 수요 증가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폐지하기에는 시기도 좋지 않다. 전셋값이 오르는 상황에서 임대료 상한을 걷어낼 경우 상승세에 기름을 부을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민 여론이 임대차 2법 폐지에 우호적이지 않다. 지난해 말 국토연구원이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54.1%는 2+2년의 임대차계약 갱신기간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어 ‘2+1년’ 22.4%, ‘2+3년’ 12.2%의 순이다. 임대차 2법 도입 이전의 2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응답은 9.0%에 불과했다.

전문가들 역시 "임대료 상승폭 5% 이내로 최장 4년의 주거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세입자에게 주는 심리적 안정감은 명확하다"며 "이미 시장에 녹아들어 있는 제도를 폐지하게 되면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라고 말한다.

깡통전세는 전세제도가 유지되는 한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 하지만 전세제도는 주택을 매개로 한 개인 간 금융거래로 월세에 비해 임대료 지출을 크게 절감할 수 있는 데다 내 집 장만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사실상 폐지는 불가능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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