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후보 김정식 "4·3 직접 발단은 남로당의 도민 살해" 주장’이라는 기사가 갑자기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실을 말한 것을, 왜 주장이라고 하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기사 내용에는 "강성 보수진영에서 제기해온 ‘제주 4·3항쟁은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이 주도한 무장폭동’이라는 주장과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4·3사건을 항쟁이라 하는 것부터 기자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결국 필자는 김정식 후보의 연설을 직접 찾아봤다. 문제점을 찾을 수 없었다. 4·3사건이 건국 시기 북한 김일성과 남로당 무리들이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을 방해하고자 일으킨 것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한 정읍 발언 이후, 혼란한 틈을 타서 남조선노동당의 무장총책 김달삼은 350명에 달하는 무장대를 이끌고 제주 경찰서를 습격,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이기를 거부하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되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우리와 얼굴은 똑같지만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던 제주도민들 틈에 숨었고, 그러다보니 무고한 희생자들이 너무 많아졌다.
김달삼은 반란에 실패하고 위험해지자 북으로 도주했다. 황해도 해주에서 열린 남로당 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해 제주 4·3사건에 대한 자신의 공적을 선전하며 참석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에 선출되어 국가훈장 2급 수여에 북한 헌법위원회 위원으로까지 활동했다.
김달삼은 6·25전쟁 이전 다시 남한으로 잠입, 태백산을 거쳐 일월산까지 침투해 남로당의 49년 9월 공세를 지원했다. 그는 경북 일대에서 또다시 지서 습격과 교량 파괴, 식량 약탈과 민간인 학살·납치했다. 이런 그가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사망한 곳이 강원도에 실제 존재하는 지명인 ‘김달삼모가지잘린골’이다. 당시 우리 선배 세대가, 김달삼이라는 인물에 대한 분노가 어느 정도였으면 그런 지명을 붙였을까.
3만에 달하는 당시 제주도민의 희생은 너무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에 입각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특정 정치 진영의 입맛에 맞는, 조작되고 왜곡된 역사를 배우면 안된다. 안타깝게도 현재 대한민국 교과서에는 제주 4·3 사건이 단 한 문단으로밖에 설명되어 있지 않다. 무려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 현대사에서 6·25 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임에도 말이다.
제주 4·3사건이 단순하게 정부와 미군이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스스로 찾아보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