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가 진행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이 프랑스 에넹보몽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가 진행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이 프랑스 에넹보몽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

지난 6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 세력의 ‘대세론’이 확인되긴 했지만, 지난주말 프랑스 조기 총선 결과에서 예상대로 극우 정당인 ‘국민연합(RN)’의 승리가 현실화하면서 프랑스 국내 정치를 넘어 유럽 전반에 충격파가 예고된다. 이달 중순 제10대 유럽의회 개원을 앞두고 우파 계열을 중심으로 정치그룹(교섭단체) 재편·결성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유럽 각국의 핵심 현안을 둘러싼 노선 차이에 ‘같은 듯 다른’ 우파 세력이 난립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자국 우선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유럽 각국의 극우정당들이 제 1당으로서 국정운영에 직접 참여, 새판짜기를 시도할 경우 통합을 표방해온 정치·경제공동체 유럽연합(EU) 중심의 기존 질서가 뒤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다.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에서부터 이민, 환경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제동이 걸리며 서방 내 균열이 가속할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첫 TV토론 참패가 ‘대서양 동맹’을 경시해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귀환 가능성을 키우는 상황에 더해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그리고 헝가리등 극우 정당들의 총선 대약진까지 겹치면서 유럽 각국은 경계심 속에 그 파급효과를 주시하고 있다.

1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에 따르면 각 정치그룹은 오는 16일 의회 개원 전까지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 따른 소속 정당과 의원 명부를 등록해야 한다. 유럽의회는 국적이 아닌 정치 성향·이념이 맞는 각국 정당이 모여 형성한 정치그룹이 교섭단체 역할을 한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정치그룹마다 전략적으로 이합집산하면서 참여 정당이 일부 변동되곤 한다.

최소 7개 회원국에서 의원 23명이 모이면 새 정치그룹을 만들 수 있다. 제9대 의회에서는 정치그룹이 7개였다.

기자회견 하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왼쪽)와 헤르베르트 키클 오스트리아 자유당 대표. /AFP=연합
기자회견 하는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왼쪽)와 헤르베르트 키클 오스트리아 자유당 대표. /AFP=연합

◇ 극우, 포퓰리즘 정당...반EU 노선

올해 최대 관심사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한 유럽 각국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움직임이다. 기존 유럽의회 구도에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내민 건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다. 헝가리 민족주의 성향 피데스(Fidesz)당을 이끄는 오르반 총리는 전날 오스트리아 극우 성향 자유당(FPO), 체코 긍정당(ANO)과 ‘유럽을 위한 애국자’(Patriots for Europe)라는 이름의 정치그룹 결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세 정당은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총합 24석을 차지했다.

세 정당은 EU의 기득권 정치인들이 전쟁과 이민·침체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며 불법 이민을 막고 친환경 정책을 되돌려 EU 정책에서 국가 주권을 지키겠다고 주장했다. 반EU 노선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대러시아 제재에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새 정치동맹 결성 발표 하루 만에 포르투갈 극우 정당 체가(Chega)는 합류를 선언했다고 유로뉴스가 전했다. 체가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2석을 확보한 정당이다.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 등 헝가리·오스트리아·체코 등 중동부 유럽 우파 민족주의 정당들은 지난달 30일 ‘유럽을 위한 애국자’라는 새 유럽의회 정치그룹을 결성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오르반 총리는 유럽에서 대표적인 친러시아 지도자로, 대러시아 제재와 EU·나토의 러시아 지원에 부정적이다.

이로써 ‘유럽을 위한 애국자’ 그룹은 이제 3개 정당만 더 합류하면 교섭단체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잠재적 합류 가능성이 있는 정당 중 하나로 정체성과민주주의(ID)에서 퇴출당한 극우 독일대안당(AfD)을 꼽는다. AfD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 마린 르펜 의원이 이끄는 프랑스 국민연합(RN)과 거리를 두면서 오르반 총리의 새 정치동맹에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멜로니 총리와 르펜 의원은 각각 기존 정치그룹인 유럽보수와개혁(ECR)과 ID 소속이다.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지난달 29∼30일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세금을 채무국에 나눠주는 건 독일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우리 국가재산이 폰데어라이엔(EU 집행위원장)과 멜로니를 위해 낭비되는 걸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ECR과 ID의 정치지형이 전반적으로 변하고 있어 다른 정당과 협력할 새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아직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은 폴란드 법과정의당(PiS) 역시 오르반 총리 주도 반EU 정치그룹에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새롭게 구성될 유럽의회에서 3위 정치그룹으로 등극한 ECR의 영향력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ECR은 이탈리아 유럽의회 선거에서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FdI의 선전으로 720석 중 83석을 확보했다. 멜로니 총리는 2022년 10월 집권 이후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찬성하는 등 친EU, 온건 실용주의로 노선을 변경했다. ID와 다른 극우 세력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ECR보다 극단으로 평가받는 ID의 경우 적어도 유럽의회 내에서는 기대했던 만큼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ID는 프랑스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의 선전에 힘입어 유럽의회 선거에서 5위(58석)를 차지했다. RN의 압승이 프랑스 국내에서는 조기 총선을 촉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ID 차원에서 보면 AfD 제명으로 시작부터 몸집이 줄어든 데다 원래 ID 소속이던 오스트리아 FPO가 오르반 총리와 연대하기로 하면서 유럽의회 개원 시 실제 의석수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ID의 주축인 RN이 자국에서 표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 과격한 견해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FPO의 이탈 사례처럼 다른 ID 소속 정당들과 서서히 균열을 보였다고 해석했다. RN은 프랑스 조기 총선 결과 1당을 차지해 여소야대가 되면 유럽의회 내 ID 입지와는 별개로 EU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 의사 결정 과정에서 EU 차원의 정책 추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 러, 유럽 극우바람에 표정관리…"佛총선서 유럽 추세 확인"

프랑스 조기총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정당이 승리하고 유럽의회에서도 우파가 약진하자 러시아는 ‘표정 관리’를 하는 모습이다. 유럽의 우파가 대체로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소극적이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연합(EU) 등 서방 동맹에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리는 이들 선거 과정을 매우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면서도 "프랑스를 포함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 부상한 추세들이 확인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30일 치러진 프랑스 조기 총선 1차 투표는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이 득표율 1위를 차지하면서 승리했다. 7일 2차 투표에서 최종 결론이 나겠지만 RN이 총리를 배출하면서 프랑스 국정의 주도권을 쥘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프랑스에서 RN이 다수당으로 자리 잡고 현 집권 여당이 소수당으로 전락하는 것은 러시아에 호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파병론을 거론하면서 러시아에 매우 공세적이지만 RN은 전혀 다르다.

‘프랑스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RN은 프랑스의 우크라이나 상황 직접 개입을 반대한다.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축소하겠다고 예고했고 장거리 미사일 지원에도 선을 그었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의 집권당이 패배하고 극우 정당이 약진한 것도 러시아로선 반가운 일이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 대해 "우파 정당의 인기가 높아지는 추세가 맨눈으로 확인된다"며 앞으로 유럽의회에서 우파 정당들이 친유럽당의 뒤를 쫓아 세를 불릴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는 유럽 정치지형의 최근 변화에 겉으로는 "다른 나라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며 원론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미 대선 후보들의 TV 토론에 대해서도 페스코프 대변인은 "미국 내부의 문제"라며 "절대로 평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 선거 운동에 간섭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이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승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달가운 일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나토 동맹에 회의적이고 우크라이나 사태 역시 ‘조기 종식’을 주장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월 인터뷰에서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러시아에 더 유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더 경험이 있고 더 예측가능한 인물이며 구식 정치인"이라고 슬쩍 비꼬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은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든 달라질 것은 없다고 여러 차례 강조하며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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