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쓰청 교회, 최근 기독교 관련 없는 아시안 게임 기념 행사 개최
현재 담임목사, 교회 웹사이트서 정부의 기독교 중국화 프로그램 지지

“국영교회 개최 대중행사에 공산주의 지지 발표만 있고 복음전파 없다”
복음 아닌 중국‧공산주의 알리는 것이 사명 되자 전임 목회자도 사임해

쓰청 교회 교인들이 올 가을 개막될 아시안 게임을 축하하고 있다. /VOMK
쓰청 교회 교인들이 올 가을 개막될 아시안 게임을 축하하고 있다. /VOMK

미국의 존 네비우스(John Nevius) 선교사는 비전통적인 교회 개척 방법과 선교 방식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가 1850년에 중국 저장성 항저우에 설립한 교회가 최근 ‘기독교의 중국화’ 위한 시범 장소로 변질됐다. 

2일 한국 순교자의소리(Voice of the Martyrs Korea, VOMK)에 따르면 올해 가을 개최될 제19회 항저우 아시안 게임을 기념하기 위해 최근 그 교회에서 개최한 행사에서 이같은 움직임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저장성 항저우에 있는 쓰청 교회는 중국 정부에 등록된 국영교회로, 작년에 쓰청 교회는 제19차 중국공산당 전당대회의 정신을 이행하기 위한 특별 회의를 조직했다. 이 교회는 또한 2022년 12월 중국 정부 통일전선부에서 조직한 전국 대회에서도 크게 칭송받았다. 그리고 지난 6월 16일, 아시안 게임 ‘100일 카운트다운’ 행사를 열었다. 그 행사의 어떤 내용도 기독교와 관련이 없었다.

VOMK에 의하면 쓰청 교회는 이 행사를 위해 일련의 문화 행사와 운동경기를 개최했고, 교회 오케스트라는 비기독교 음악을 연주했다. 행사에서는 중국의 전통 예술 형태와 음악, 즉 촌극과 태극권, 무용과 운동 시범 및 경극 같은 것들을 선보였다. 

현재 쓰청 교회 담임인 황밍커 목사는 교회 웹사이트에서 중국 정부의 ‘기독교 중국화’ 프로그램을 지지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쓰청 교회는 법률의 대중화를 위한 저장성의 시범 장소로서, 그리고 법률의 통제를 받는 종교를 교육하고 홍보하기 위한 저장성의 본부”라며 기독교가 진정으로 중국의 기독교가 되도록 기독교를 사회주의 사회에 잘 적응시켜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VOMK 폴리 현숙 대표는 이에 대해 “공산당의 중국화 과정에는 기독교와 중국 문화 사이의 상호 적응 과정이 없다. 오직 기독교만 공산주의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지, 기독교에 적응하는 공산주의 같은 것은 없다”며 “쓰청 교회 같은 국영 교회가 개최하는 대중 행사에 공산주의 원칙과 관행을 지지하는 발표만 있고 복음 전파는 없다. 소위 '중국 기독교'의 중심에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중국이 놓여 있다”고 우려했다. 

VOMK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쓰청 교회 설립자인 존 네비우스 선교사로부터 ‘삼자three-self’라는 표현을 받아들였지만, 그가 의미한 내용은 싹 빼버리고 자신들이 원하는 의미로 대체했다. 네비우스 선교사의 ‘삼자’ 방식은 교회가 스스로 자립하고, 스스로 이끌고, 스스로 번성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그 목적은 정부와 문화를 진흥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에 방해가 되는 일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비우스 선교사가 중국 땅에 개척한 쓰청 교회는 이제 복음이 아닌 중국 문화와 공산주의를 알리는 것이 사명이 돼 버렸다.

이러한 변화 때문에 쓰청 교회의 전임 목회자인 첸펑성 목사도 사임한 것으로 알려졌다. 첸펑성 목사는 지난 7년 동안 쓰청 교회를 섬겼지만 지난 올해 7월 1일 공식 사임했다. 그는 사임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쓰청 교회가 중국화를 위한 '시범 교회'로 그 정체성을 확대해 나가던 시점에 사임했다는 사실이 눈에 띈다.

쓰청 교회는 항저우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교회 가운데 하나로 미국 북장로교회에 의해 시작됐고 1859년 네비우스 선교사에 의해 설립됐다. 1868년에는 중국인 목사 장청자이가 항저우 피쉬 레인에 주택 한 채를 임대해 ‘설교하는 장소’라는 이름으로 사역했고 4년 후에는 펭글 브리지에 있는 방 세 개 짜리 공간을 구입하여 예배 장소로 사용했다. 교인들 숫자가 늘어나면서 1927년 같은 자리에 새로운 교회 건물을 완공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정부가 운영하는 도서관 창고로 용도가 변경됐으나 1981년 새로운 종교 정책이 시행되면서 교회 재산을 반환 받았고 다시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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