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으로 가르치고 고난과 사랑을 적절히
경험토록 하며 반드시 예절교육을 시켜야
성경은 자녀를 부모 스스로 말씀으로 가르치라고 명령
말씀과 충돌하는 부모의 모습에 아이들은 혼란을 경험
하나님의 사람이 자라나는 가장 기본적인 모판은 가정
자녀교육비결 찾아다니지 말고 먼저 부모가 본 보여야
유대인 교육은 명문대 보내기가 아닌 제자화하는 교육
가정에서 똑같은 말씀 지키는 유대인은 세대차가 없어
사랑의 보살핌과 함께 고난 이길수있는 힘을 길러줘야
예절교육 잘받은 아이들은 세상에서도 경쟁력 갖게 돼
한국에서는 ‘유대인 교육’이라고 하면 ‘천재 교육’이라고 인식하고 관심을 갖습니다. 한국 학부형들의 관심은 보통 자신들의 자녀들이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의 교육은 사실 아이를 천재로 만들거나 명문대에 보내는 교육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하버드나 국제적인 명문대에 많이 입학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정해놓은 법칙입니다.(잠언 1:7)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명기 6:4-7)
유대인 교육의 핵심은 바로 이 신명기 말씀입니다. ‘자녀를 말씀으로 부지런히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의 크리스천 학부형들은 이 말씀에 잘 순종을 안 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가 아니라 공교육이 자녀들을 가르치고, 학원 선생님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모들은 돈 버느라 바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신의 자녀를 부모 스스로 가르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의 학문은 학교에 가서 배운다고 해도, 신앙 교육마저 교회 주일학교 목회자나 선생님들에게 맡기고 방관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한국교회의 다음 세대가 죽어가고 있는 것은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이를 그들의 부모에게 맡기셨는데, 왜 다른 이들에게 그 일을 위탁합니까. 아이가 아무리 수련회 참석해 은혜를 받고 돌아와도, 여전히 엄마의 정신이 썩어있고 아빠가 안 바뀌고 이는 가정에서 과연 아이의 신앙이 바뀔 수 있을까요.
은혜를 받았던 말씀과 충돌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은 오히려 혼란을 경험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람이 자라나는 가장 기본적인 모판은 가정입니다. 그런데 가정이 바뀌기 위해서는 부모가 먼저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바뀌기 싫고 변화되지 않으면서 자신의 자녀의 신앙만 바뀌고 성장하길 원하는 것은 욕심입니다. ‘우리 엄마는 가짜야. 나한테만 말씀 읽으라 그러지 자기는 맨날 드라마만 봐.’ ‘우리 아빠도 가짜야. 나한테는 하나님이 돈보다 중요하다고 하면서 돈과 관련된 일에는 목숨을 걸고 싸워.’
이런 가정에서 자라나는 크리스천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는 그걸 그냥 가만히 지켜보고, 중학생이 되면 입을 닫고 말을 안 하고, 고등학생이 되면 부모를 방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대학교에 가서 부모의 영향력을 벗어나면 결국 신앙을 버릴지도 모습니다. 대한민국의 크리스천 부모들이 이것을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집 밖에서 자녀교육의 비결을 찾아다니지 말고 가정에서 먼저 자신이 본을 보임을 통해 자녀 교육을 똑바로 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세대 차이 나는 이유는 ‘데이터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엄마 아빠가 어려서부터 보고 들은 데이터와 자녀들이 보고 들은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시대가 달라서 경험한 정보가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통 유대인들은 세대 차이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신명기 말씀처럼 가정에서 똑같은 말씀을 지키는 때문입니다.
할아버지가 보는 성경, 아빠가 보는 성경, 아들이 보고 있는 성경이 다 똑같은 ‘토라’(구약성서의 첫 다섯 편, 창세기·출애굽기·레위기·민수기·신명기)이기 때문입니다. 여섯 살때 암송한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라는 말씀을 우리 아빠도 여섯 살 때 암송했고 할아버지도 외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쉐마(히브리어 '들으라') 교육입니다. 쉐마 교육은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는 교육이 아니라 자녀를 제자화하는 교육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자녀의 내면의 그릇을 키워주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마음의 그릇이 커지기 위해서는 나무가 적당한 햇빛과 물을 통해 뿌리를 잘 내리듯이, 사랑의 보살핌과 함께 고난을 이길수 있는 힘을 길러줘서 인생이 뿌리를 깊이 내려도록 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너무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키우면, 겉으로는 물을 많이 먹었으니까 잘 큰 것처럼 보이지만 고난이 찾아오면 뿌리가 없기 때문에 그냥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옛말에도 어른들이 젊었을 때는 사서도 고생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않고 척박한 환경에서 뿌리를 내린 내린 사람은 마음의 그릇이 단단해지고, 힘들어도 쉽게 죽지 않습니다. 고난이 오면 더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됩니다. 만약 우리 집이 가난하다면 그 또한 감사하면 됩니다. 아이가 강제적으로 뿌리를 깊게 내리게 됩니다. 그래서 힘들게 큰 아이들은 ‘악바리 근성’이 있습니다. 힘든 상황을 이겨낼 힘이 길러집니다.
그러나 이럴경우 또 너무 뿌리가 나면서 동시에 쓴 뿌리가 함께 자랄 수 있습니다. 이건 사랑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많이 받으면, 사람이 달콤해집니다. 결혼을 해도 달콤하게 삽니다. 그래서 풍부한 사랑과 함께 물은 적당히 조금만 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의 마음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더불어 예절 교육도 상당히 중요합니다. 옛날 우리 부모님들은 가난했어도 예절교육을 했습니다. 가난해서 먹을 게 없어도, 아버지가 먼저 수저를 잡기 전에는 먹지 말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아빠가 오기도 전에 먼저 밥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아이고 우리 새끼, 많이 먹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녀를 사랑하는 길이 아니라 죽이는 길입니다. 예전에는 가난했어도 예절교육을 시켰기 때문에 사람들이 기본 예의가 있었습니다. 인격이 있고 품위가 있었습니다.
이런 기본기가 갖춰진 아이들은 나중에 세상으로 나가도 경쟁력을 갖게 됩니다. 세상의 최고 정상에 가보면 실력은 다들 비슷비슷합니다. 거기서부터는 정직한 사람인지, 예의가 바른 사람인지, 성품이 좋은 사람인지로 판가름 나는 것입니다. 이런 좋은 마음밭을 갖고 있는 사람이 신앙도 좋습니다. 설사 부모가 신앙교육을 잘 못 시켰어도 예의를 잘 가르친 아이들은 나중에 예수님을 믿게 돼도 잘 믿습니다. 그러니 당신의 자녀들을 ‘리얼 크리스천’, 하나님의 사람들로 만들고 싶다면, 말씀으로 가르치면서 고난과 사랑을 적절하게 경험하게 해 주며, 반드시 예절교육을 시키도록 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