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T(비판적 인종이론) 교육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한 토니 쿡 공화당 의원(중앙)이 주(州)교육위원회 가결 후 담소하고 있다. 공화당 주도의 하원에 넘겨지면 통과될 전망이다. /연합

미국도 ‘역사 전쟁’ 중이다. 미국을 ‘흑인노예의 상륙으로 시작된 죄많은 나라’라고 보는 관점은 학계의 논의·논쟁에 머물다가 최근 평범한 시민들까지 피부로 느끼게 됐다. 대한민국의 현실과 닮은꼴이다. "친일 친미 적폐세력,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라는 논리가 교육 현장과 대중서사(영화·드라마 등)를 통해 공개적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미국 인디애나 주에서 공립학교 교과과정 편성에 ‘학부모 권한’을 확대하는 입법을 추진 중인 가운데, 주하원 교육위원회는 12일(현지시간) 관련 법안을 8대 5로 가결해 하원 전체회의에 넘겼다. 곧 표결에 부쳐져 승인될 경우, 상원에 이관된다. 주의회 상·하원과 행정부 모두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어 쉽게 통과될 전망이다. ‘공립학교 교과 편성 권한을 누가 갖느냐’의 대립 같지만 실은 ‘CRT(Critical Race Theory, 비판적 인종 이론)’을 둘러싼 교육문제가 핵심이다.

역사 교사 출신 토니 쿡 주하원의원(공화당) 발의의 이 법안은 공립학교에 교육과정 자문위원회를 설치, 학부모가 교재 및 수업내용을 사전에 확인·심의하도록 하고 있다. 자문위원회는 학부모 40% 이상, 교사 및 교육행정가 40%, 그 외 교육에 관심있는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채우되 의장은 반드시 학부모가 맡도록 했다. 확정되면 내년 6월30일부터 교사들은 새학기 교재 및 수업내용을 포털에 사전 게시해야 하며, 자문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특정 내용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법안 반대론자들은 공화당 측이 CRT 교육을 제한하기 위해 만든 법안이라며 반발해 왔다.

쿡 의원은 "인종차별 역사 교육에 100% 동의하나, 사실만 전달해 학생들 스스로 의견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10일 열린 공청회에서 학부모 대부분이 법안에 찬성했지만 교사와 교육위원들은 반대 목소리를 냈다. NBC방송에 따르면 지금까지 최소 22개 주에서 CRT 교육을 금하는 내용의 법안이 발의돼, 텍사스·오클라호마·아이다호·아이오와·테네시 등 5개 주에서 최종 승인, 애리조나·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뉴햄프셔 등 17개 주에서 입법 추진 중이다. 작년 조지아주 교육위원회의 결의안은 "학생 본인의 인종 정체성으로 인해 죄책감·불안·심리적 압박을 초래하는 인종교육을 수업시간에 해선 안 된다"는 내용을 담았다.

주로 반(反)기독교 내지 소위 ‘급진좌파’ 지역에서 CRT가 많이 퍼져 있다. 이제 수많은 학부모들, 이 문제에 무심하던 사람들까지 경각심을 가지게 됐다. "사회 분열, 서로를 향한 증오를 낳을 뿐"이라는 것이다. CRT 지지자들은 미국 내 빈부격차, 인종 간 불평등, 인종차별이 백인 위주의 사회 공공정책 및 법률 체계에서 비롯됐으며, 학교 수업에서 이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문명사와 함께 시작된 노예제가 백인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인류의 잘못을 모두 백인에게 전가, 미국 역사를 전면 부정한다는 게 CRT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이다. CRT의 위험성을 지적해온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이 개념은 1950년대 ‘흑인 해방신학’의 계보를 잊는다.

 

정작 마틴 루터 킹 목사 같은 사람들의 노력을 무력화시킨 흐름이다. 그래서 CRT를 흑인시민권 옹호 운동에 비하는 게 기만적이다. 서로를, 자기나라를 증오하게 만드는 도구이자 메커니즘일 뿐이다. 쿠바계 영화감독 로비 스타벅 역시 "좌익 권력투쟁에 이용된 논리와 CRT가 얼마나 판박이"인지 언급하며 경고한다. "쿠바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을 현재 미국의 좌파정치인들과 주류 미디아가 ‘한쪽으로 치우친’ 평등·정의의 미명 아래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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