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훈
최영훈

바보 윤석열이 폭발했다. 김종인과 이준석, ‘티티카카 협공’으로 윤 후보를 한 달 넘게 괴롭힌 ‘선사후공(先私後公)의 괴물들’ 이 둘은 3.9 대선과 동시인 서울 종로 등 다섯 군데 재보선과 6.1 지방선거 공천권 등 잿밥 다툼에만 골몰했다. 비우고 버리는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무겁게 머리에 이고 지키려고 안간힘 쓰면 지게 마련이다. 그 이치는 정치투쟁에서도 통하지만, 보통의 세상살이에서도 마찬가지다.

비우면 발걸음이 가볍다. 뭔가를 붙들고 지키려 안달인 자는 발이 무겁다. 가벼운 몸놀림으로 먼저 가 매복해 급소를 칠 무기를 준비하고 숨을 가다듬으면 승리를 낚아챈다. 국민의힘 내홍이 정점에 이른 것을 보고 나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라고 생각했다. 바보 윤석열이 꾹 참고 지켜보다 상대의 힘을 역이용해 뒤집기에 성공하는구나!

윤석열은 유도를 했다. 검은 띠를 맸다. 운동과 거리가 먼 김종인과 이준석의 짓거리에 반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둘이 빈틈을 보이고 주변 상황이 좋아지자 그들의 무리수를 역이용해 반전에 성공했다. 기회를 보고 있었던 거다. 힘을 내야 할 때 힘을 내고, 기술을 부려야 할 때 기술을 부려 뒤집었다.

윤석열은 측근들과 통화하면서 상의도 없이 선대위 전면 개편 폭탄선언을 해버린 김종인을 겨냥해 "나에 대한 쿠데타"라고 대로했다. ‘자의 반 타의 반’. 참 정치사에서 회자가 되는 말이다. JP가 박정희의 견제로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나 외유를 떠날 때 기자들에게 한 말인 걸로 안다.

윤석열도 그렇게 ‘자의반 타의반’으로 선대위를 완전 해체하고 새로운 체제를 5일 오전 발표했다. 앓던 이가 저절로 빠져줬다. 윤석열은 노욕과 투정으로 자신을 협공한 둘의 오만과 빈틈을 봤을 뿐이다. 그리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상대의 힘, 그 헛심을 슬쩍 피하면서 다리를 걸어 자빠뜨렸을 뿐이다.

유도에서는 큰 기술도 아니다. 슬쩍 다리를 걸었다. 상대가 빠른 속도로 달리다 보니 나동그라졌다. 윤석열이 최소 3일을 숙고하리라 봤는데 다소 빠르게 결단했다. 아무튼 대선 60일 전이니 갈 길이 바쁜 것은 맞다. 상대 이재명이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니니….

조직 개편은 아무것도 아니다. 후보 중심의 체제를 만들었으니 믿고 맡기는 위임통치를 하길 빈다. ‘친위 쿠데타’를 결행한 김종인은 왜 그렇게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후보를 깎아내렸을까? 여권이 윤석열에게 ‘바보 프레임’ ‘김종인 아바타’로 힐난하도록 말이다.

김종인이 윤석열을 바보로 희화(戱畵)화하는 여권의 책동도 못 본 체 망나니짓을 한 까닭이 뭘까? 그 속셈은 대선 승리라는 ‘공’(公) 보다는 공천권 장악이라는 ‘사’(私)를 앞세운 야욕을 이준석과 공유한 탓이다.

TBS 김어준 뉴스공장에서 김용남의 발언을 들어보자. "(김종인의 쿠데타?)들여다보면 그런 측면이 있죠. 후보에게 미리 상의 없이 선대위의 전면 개편을 발표…."

선대위에선 소통 과정의 해프닝이라고 해명했지만 지난 4일 윤석열과 김종인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김종인과 이준석은 앞으로 이런저런 이유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것만 같다.

먼저 이준석이 성 상납 의혹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나 특수부에 불려가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조사받을 거다. 김종인도 자신은 무관한 것 같고 부인에게 로비가 집중됐다는 설(說) 등으로 상당 기간 뒤숭숭할 거다.

지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 둘 중 최소 하나는 쇠고랑까진 아니어도 법망을 피하지 못할 것만 같다. 아무튼 이준석의 정치생명은 끝이 났다. 그는 ‘0선의 황태자’로 김종인과 함께 사라질 거다. 하바드 대학을 나온 이준석의 후원 그룹도 정치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사랑으로 하는 거라는 사실부터 깨우쳐야 한다. 머리에서 30∼40cm밖에 안 떨어져 있지만 이 마음과 사랑, 진심이 사람들을 움직인다.

술(術)보다 위에 기(氣)가 있다. 그 기보다 위에 있는 것이 도(道)라고 하는 거다. 오규원이라고 하는 시인이 있다. 그 시인의 어느 시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엔지니어링에 해당하는 게 ‘술’이라면 ‘기’는 예술의 차원이다. 그보다 더 높은 데 수행의 차원인 ‘도’가 있다는 말이다.

황순원의 아들 황동규 시인은 또 이렇게 노래한 바 있다. ‘꽃이 지고 있으니, 조용히 좀 해주세요.’ 참으로 아프게 폐부를 찌른다. 꽃이 필 때를 노래한 시인은 많지만 질 때를 가슴에 각인시키는 몇 안 되는 시다. 이형기의 낙화, 조지훈의 낙화도 멋진 시들이지만 나는 동규의 이 시구에 마음이 설렌다. 김종인, 과대 포장된 사람이긴 하지만 그가 지는구나!

김종인의 꽃이 이리도 참담하게 지는구나? 그의 ‘허명’도 ‘오욕’으로 뒤덮이는 게 안타깝다. 두 손 모아 합장·성심·성의 기도. 그를 보낸다. 조용히 지는 꽃을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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