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한다. 1948년 이후 실향민·월남민·귀순용사 등의 용어를 거쳐 ‘북한이탈주민’(탈북민)으로 정착된 것은 1992년이었다. 이 해에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을 만든 취지가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정착을 통해 실질적인 평화통일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1990년대 이후 입국한 탈북민은 지난해 기준 3만4천명 수준이다. 각종 탈북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의 90%는 ‘한국에 오기를 잘했다’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착 과정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탈북민들은 완전히 다른 남북 체제, 취업 문제, 자녀 교육, 학력 격차, 외국어, 재북 당시 건강문제 등으로 인해 제대로 정착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스트레스도 심하다. 평균적 한국인들이 사회생활 중 겪는 스트레스의 4배 정도를 겪으며 살아간다. 탈북민들의 정착에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관심과 사랑이다. 이 때문에 탈북민에 대한 정치적·사회적 관심이 높아질수록 탈북민들의 한국사회 정착 만족도가 높아진다. 반대로 관심이 떨어질수록 정착 만족도도 떨어진다.
최근 30대 남성 탈북민 김씨가 동부전선 최전방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되돌아간 사건은 1차적으로 군의 경계 실패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우리사회 정착에 실패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년간 탈북민을 만난 적이 없다. 탈북민과의 만남 자체가 북한 김정은에게 잘못된 신호를 줄까 봐 몸을 사린 것이다. 통일부 장관마저 탈북민 정착지원 사무소인 하나원을 찾지 않는다. 북한 인권문제는 무관심을 넘어 대북전단법 제정 등 탄압에 나섰다.
이 때문에 지난해 입국 탈북민이 34명에 불과했다. 보수 정권 때는 연평균 입국 탈북자 1000명~2,000명 수준이었다. 2019년 탈북민 한성옥 씨와 다섯 살 난 아들은 서울에 와서 굶어 죽었다. 탈북민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무관심의 차이가 이렇게 현격하다. 4일 통일부는 지난 10년간 북으로 되돌아간 탈북자가 30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동부전선 철책 재입북 사건뿐 아니라 박근혜 정부 때도 재입북이 있었다는 사실을 내비치며 문 정권의 잘못을 덮으려는 꼼수가 뻔히 보인다. 이번 사건은 정부의 탈북민 냉대 정책이 불러온 예견된 참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