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CCC와 ‘심리지원 프로그램’ 운영
"생명 나누고 하늘로 떠난 딸이 바라는 삶 살아가고 싶어요"
"딸을 떠나보낸 뒤 장기기증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김옥진 씨는 6년 전 딸과 사별했다. 당시 27살이었던 김 씨의 딸 이지은 씨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지며 7명에게 장기를 기증하고 젊은 생을 마감했다. 5남매를 홀로 키워온 김 씨는 참척지변(慘慽之變)의 아픔을 겪고도 남은 자녀들을 양육하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돌볼 틈이 없었다.
딸의 선한 성품을 생각해 장기기증을 결정했지만, 기증 직전까지 온기가 남아있던 딸의 모습을 떠올리면 죄책감과 상실감이 밀려왔다는 김 씨는 8월 8일 시작된 심리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같은 아픔을 지닌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이하 도너패밀리)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공감과 위로가 함께한 8회기의 심리치유 여정, 다시 일어설 힘 얻어
지난 11월 14일, 총 8회기의 여정을 마무리한 도너패밀리를 위한 ‘심리지원 프로그램’은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진행된 네이버 해피빈 모금을 통해 마련된 기부금으로 운영될 수 있었다. 2023년부터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이하 본부, 이사장 유재수 장로)와 함께 도너패밀리의 심리지원을 맡아온 CCC순상담센터가 올해도 해당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녀·배우자·부모를 잃은 도너패밀리 7명의 정서적 치유를 지원했다.
프로그램은 기증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을 나누고, 자신이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자기 회복으로 나아가는 방향으로 운영되어 유가족들의 건강한 애도과정을 동행했다. 특히 6회기에는 서울 보라매공원에 조성된 뇌사 장기기증인 기념공간을 방문해 기증인에게 편지를 쓰고, 기증인의 이름이 새겨진 명찰을 부착하며 가슴 속에 묻어둔 슬픔을 내려놓고 삶의 희망을 재발견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14일 서울지하철 5호선 충정로역사 내에 위치한 도너패밀리 사랑방에서 열린 ‘제5회 심리지원 프로그램’ 수료식에서 선배 도너패밀리에게 꽃다발을 건네받은 노자안 씨는 남편 故 천기화 씨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다. 고인은 2011년 세상을 떠나며 장기 7개와 인체조직 36개를 기증했다. 노 씨는 "울타리 같던 남편을 잃은 뒤 감정이 무너질까 두려웠지만, 고인의 사랑을 기억하는 일이 곧 나를 회복시키는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2020년 4명에게 생명을 나누고 떠난 故 신경옥 씨의 어머니 허만임 씨는 "자녀를 먼저 보낸 일은 여전히 가슴이 아프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위로받고 슬픔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라며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딸을 위해 건강히 살아가는 행복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라고 전했다. 김옥진 씨 역시 "함께해준 도너패밀리 덕분에 혼자인 것 같은 슬픔 속에서도 다시 일어설 힘을 얻었다."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본부는 지난 2013년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를 발족해 심리지원 프로그램 뿐 아니라 D.F장학회를 통한 기증인 유자녀 학비 지원, 사진전·연극 등 문화 공연 운영 및 이식인과의 교류활동과 행복여행 지원 등으로 유가족의 정서적 치유를 돕고, 생명나눔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는 활동을 지속해가고 있다.
본부 유재수 이사장은 "도너패밀리들이 자신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같은 경험을 가진 이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하며 묻어두었던 감정을 해소하고 일상을 회복하길 바란다."라며 "본부는 앞으로도 다양한 예우 프로그램을 통해 유가족을 지원하여 생명나눔의 고귀한 뜻이 사회적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성숙한 장기기증 문화를 조성해가겠다."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