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경기도 여주시에서 열린 ‘2025 여주오곡나루축제’ 무대에서 이례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동아일보 등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PLA) 복장을 한 인물들이 붉은 군기를 들고 등장했으며, 대형 스크린에는 ‘8·1’ 문양이 선명히 새겨진 중국군 행진 영상이 상영됐다.
불과 며칠 뒤,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무대 인근에서도 중국인 약 100명이 군복을 연상시키는 단체복을 입고 붉은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장면이 포착돼 SNS를 통해 급속히 확산됐다.
동아일보는 이를 "군복을 연상케 하는 단체복 행진"이라 보도했으며, 시민들 사이에서는 "이곳이 한국인지 중국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마치 점령군의 행진 같다"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행사 주최 측은 "사전 검수가 미흡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번 사안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함의가 절대 가볍지 않다.
이 사건은 공연이나 문화 교류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오랜 기간 세계 각지에서 전개해 온 문화적 영향력 침투의 징후로 봐야 한다. 중국은 자국 내에서는 언론·종교·인터넷을 강력히 통제하면서도, 해외에서는 ‘문화 교류’라는 이름 아래 자국의 정치적 이미지를 미화하고 확산시킨다.
이른바 ‘소프트 파워’(soft power) 전략이다. 예술·축제·공연·언어 교육 등 문화적 통로를 통해 자국의 정치 이념과 역사 해석을 은밀히 주입하는 것이다. 이번 여주축제 사례처럼 붉은 깃발과 군복, 그리고 PLA 문양이 등장하는 ‘공연’이 아무런 검증 없이 공공 무대에 오른 것은, 이러한 침투가 이미 생활 문화 영역까지 깊숙이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무심코 허용된 붉은 깃발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제국의 상징이며, 복속과 침묵의 언어다. 홍색(紅色)은 중국 공산당의 혁명과 피, 그리고 통제를 상징한다. 이러한 색채와 문양이 대한민국 축제 무대와 한강의 광장에서 아무 제약 없이 등장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이미 ‘경계 의식’을 상실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문화’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시각적 언어는 곧 이념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눈앞의 장면을 단순한 퍼포먼스로 여긴다면, 우리는 사회의 가장 중요한 방어선인 ‘상징의 영역’을 내어주는 셈이다. 역사는 언제나 상징에서 시작해 현실로 굳어진다. 깃발을 허용하는 순간, 그 깃발이 상징하는 체제의 논리와 가치가 함께 들어온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사회의 정신적 주권이 흔들리고 있음을 경고한다. 우리는 이 시각적 침투의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신장(新疆) 위구르의 현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문화’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동일한 논리가, 그곳에서는 언어와 신앙 그리고 자유까지 지워버렸다.
지금 우리가 무심코 허용한 그 붉은 깃발은, 단지 공연의 장식이 아니라 경계해야 할 신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