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호
강병호

중국은 매년 10월 25일을 항미원조(抗美援朝) 기념일로 지정하고 대규모 추모식과 기념행사를 개최한다. 2021년 개봉한 영화 ‘장진호’(長津湖)와 그 속편 ‘장진호수문교’(長津湖之水門橋)는 이 날을 상징하는 콘텐츠로, 합계 114억 위안(약 2조2000억 원) 흥행 수익을 올리며 중국 영화사 흥행 1·2위를 기록했다.

시진핑 주석은 이를 ‘항미원조 정신의 승리’로 평가했으며, 교육부는 전국 초중고교에 관련 역사 교육 지침을 배포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념과 콘텐츠는 6·25전쟁 참전을 정당화하고 민족주의를 고취하기 위한 국가 선전의 성격이 강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제법과 역사 기록은 중국과 시진핑의 주장을 전혀 뒷받침하지 않는다. 1950년 10월 중국 인민지원군의 한반도 참전은 1951년 2월 1일 채택된 유엔총회 결의 A/RES/498(V)에 따라 ‘유엔과 유엔군에 대한 적대행위’로 규정됐으며, 중국의 무력 개입을 강력히 규탄했다. 이 결의는 유엔 회원 60개국 중 44개국 찬성, 7개국 반대, 9개국 기권으로 통과됐다.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은 유엔 회원국이 아니었고, 정식 선전포고 없이 타국 영토에 군사행동을 한 것은 국제법상 명백한 불법 무력행사이다.

6·25전쟁의 인명 피해 규모는 전쟁의 불법성과 비극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대한민국 국군 전사자는 13만7899명, 부상자는 45만742명에 이르렀으며, 민간인 사망자와 실종자는 약 1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중국 인민지원군 역시 약 240만 명이 참전, 전사자만 약 14만~18만 명, 총사상자는 약 38만 명에 달했다.

이러한 막대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이 전쟁을 ‘미국의 침략에 맞선 정의의 항쟁’으로 규정하고, 참전 병사들을 ‘항미원조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이러한 서사는 전쟁의 참상을 미화하고 피해국의 고통을 외면한 정치적·문화적 선전 행위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중국의 억지 논리 앞에 한국 정치권은 되도록 중국을 자극하지 않으려 한다. 사드(THAAD) 사태 이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이 국내 산업에 타격을 준 사례는 여전히 정치권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다. 그 두려움은 결국 진실에 대한 침묵의 명분이 되고 말았다. 중국이 침략 행위를 항미원조로 신화화하는 동안, 대한민국의 일부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이 역사 왜곡의 공범이 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정신적 부역자’라 부를 만하다.

항미원조는 자위가 아니라 침략이었고, 평화가 아니라 한반도 분단의 결정적 출발점이었다. 그럼에도 중국은 영화를 통해 침략을 영광으로 재포장하고, 한국은 그 서사 앞에서 침묵한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라 방조이며, 진실을 말하지 않는 언론인과 지식인은 결국 부역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경구는 일본의 역사 부정뿐만 아니라 중국의 침략 정당화에도 동일한 역사적 무게로 적용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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