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유명 건축가가 한국 건축가들과의 미팅 때 물었다. "모던하면서도 한국적 정체성을 가진 건축물로는 어떤 게 있나요?" 누구도 선뜻 답을 못했다. 우리에겐 그런 게 없다는 괜한 콤플렉스 탓이었을까?
그 자리에 참석했던 교수 한 명이 나중 학교 강의 때 같은 걸 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아파트죠 뭐~"란 답이 바로 나왔다. 와 웃음이 터졌지만 그게 정답이다. 블랙핑크 로제가 부른 ‘아파트’라는 노래까지 전 세계적 히트를 치면서 K-아파트는 더 유명해졌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아파트는 우리의 문화다. 서울대 전상인 명예교수가 자기 책 <아파트에 미치다>에서 말한 대로 아파트야말로 오늘의 한국, 한국인을 말해주는 의미의 황금어장일 수 있다. 아파트 인구가 무려 60% 이상이다. 당연히 세계 최고다. 일본이 아직도 20%대라는 걸 염두에 둬보라
문제는 낡은 아파트다. 대다수 아파트가 국민소득 2만 달러(2005년) 시대 이전에 지어졌다. 아파트 하면 주차난과 층간 소음부터 걱정하지만, 정말 문제는 층고(層高)다. 어린 시절 모래로 만들던 납작한 두꺼비집처럼 아파트 내부가 답답해진 한 요인이다. 즉 현재 국내 아파트는 2.3m가 국민 표준으로 통하지만, 이게 개방감이 없는 죽은 공간을 만든다.
물론 이해는 한다. 예전 아파트를 지을 땐 분양 세대가 많아야 개발회사의 수익이 증가했다. 층고 3m 대신 2.3m로 낮추면 30m 높이 아파트에 4~5개 층을 더 집어넣는다. 입주자들도 그걸 받아들였다. 난방비 걱정을 덜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외국은 다르다. 유럽과 북미 경우 실내 층고는 2.6m~3m가 기본이며, 고급 아파트는 3.5m가 표준이다.
필자는 영화·TV를 볼 때 등장하는 집 실내의 높이를 관찰하는 습관이 있다. 탁 트인 실내 공간의 개방감이 그 내부 사람을 멋지고 여유 있게 만든다. 당연히 채광과 환기에도 유리하다. 다행히 국내 아파트도 이 새로운 변화가 시작됐다. 고급 브랜드의 경우 지난 몇 년 새 층고 2.7m~3m를 적용한다. K-아파트 층고를 두 뼘 내지 세 뼘 이상 높이는 작업이다.
단언하지만 면적(평수)만큼 공간의 체적(부피)이 좋은 아파트의 기준이 될 것이다. 그게 아파트의 나라 대한민국과 K-아파트 명성을 올려줄 요인임은 물론이다. 툭 트인 공간이 사람됨에도 영향을 줘 한국인의 잃어버린 호연지기와 큰 마음까지 길러주길 바란다. 사실 아파트의 층고 2.3m란 기술적 한계가 아닌 경제적 선택이었다. 이 패러다임을 바꿔야 아파트가 미래의 공간으로 성큼 다가선다. 변화는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