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8일, 중국 외교부의 마오닝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반간첩법이 중국 거주 외국인과 기자들의 활동을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질문에 대해 "모든 국가는 자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국내법을 제정할 권리가 있으며, 이는 모든 국가의 공통된 관행"이라고 답했다.
2024년 7월 16일, 미국 연방검찰은 CIA 출신의 한국계 대북 전문가 수미 테리를 사전 등록 없이 한국 정부의 대리인으로 활동한 혐의로 외국대리인등록법(FARA) 위반으로 기소했다.
중국은 반간첩법에서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뿐 아니라, 국가 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외국인까지 처벌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역시 연방법에서 ‘외국을 위한’ 간첩 행위를 처벌하고 있으며, 간첩죄로 처벌하기에 증거가 부족하거나 국익을 침해한 행위에 대해서는 외국대리인등록법이라는 별도의 특별법까지 두어 제재하고 있다.
국가의 존립과 안전이라는 막중한 법익을 보호하는 간첩죄의 기본 법제는 냉정하고 일관돼야 한다. 국가 관계는 언제든 변할 수 있으며, 안보는 감정이나 정치적 호감에 따라 흔들려선 안 된다. 중국과 미국은 간첩죄에 특정 국가와의 친분이나 경제적 이해관계를 이유로 예외를 인정하는 규정은 두지 않고 있다.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간첩법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이 외교적·경제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면 사회는 불필요한 긴장과 피해를 겪는다. 간첩죄는 단순한 범죄가 아니다. 국가 안보·경제·외교가 얽힌 복합적 사안이다. 법적 원칙과 현실적 고려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다. 중국과 미국은 집행기관의 법률 해석과 운용 과정에서 전략적 조율을 통해 그 균형을 모색했다.
중국 국가안전부가 "개정된 반간첩법은 정상적인 상업 활동을 간첩 행위로 간주하지 않으며, 외국 기업의 합법적 투자와 운영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정상적 기업활동은 보호하겠다는 메시지다. 미국 법무부가 "전통적 스파이 활동과 유사한 행위에 집행의 초점을 맞추라"는 지침을 내렸다. 간첩죄와 외국대리인등록법 적용 범위와 우선순위의 제시였다.
2024년 국회에서 논란이 된 형법 제98조, 간첩법 개정안의 핵심은 간단하다.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에서 ‘외국’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여야 합의로 법안심사소위까지 통과했음에도, 당시 법사위원장이던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예상치 못한 피해가 있을 수 있으니 공청회와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며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미루었고, 법안은 보류됐다.
정 의원이 지적한 "예상치 못한 피해"는 중국을 의식한 것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외국과의 합법적 교류·연구·산업 활동이 간첩 행위로 오인될 위험, 과도한 형벌로 인한 민간인·연구자 피해, 외교적 오해나 국제 마찰 가능성 등을 우려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우려는 간첩법이 1953년 제정 이후 처음 개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부차적 문제에 불과하다.
지난 11월 6일, 정성호 법무부장관이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 보류된 간첩법 개정안의 연내 처리를 요청하면서 개정 추진에 속도가 붙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역시 논의 재개에 긍정적 태세를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국과 미국의 간첩법은 국가 이익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설계됐다. 경제적·외교적 고려는 집행 단계에서 전략적으로 조정될 뿐이다. 한국도 간첩법 개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현실적 문제는 집행 과정에서 충분히 조율할 수 있다. 설사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형법상 간첩죄와 같은 기본 안보 법제는 설계 단계에선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72년 만에 개정되는 간첩법이다. 우방국은 있어도, 우호적인 간첩법은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