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
김은희

최근 민노총의 새벽 배송 금지를 둘러싸고 찬반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우리 귀에 친숙하지 않은 용어를 접하게 된다. 바로 ‘사회적 대화’ 혹은 ‘사회적 대화 기구’라는 말이다. 새벽 배송 금지는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이 제안했다.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는 지난 몇 년 간 택배기사 20여 명이 사망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을을 지키는 길)위원회가 주도해 만들었다. 이 기구에 참여하는 단체와 사람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을지로위원회에 속한 민주당 국회의원들, 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우정사업본부 등 정부의 관계부처,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 택배 노조 단체들, 택배사업자 단체들, 한국생활물류택배서비스협회, 소비자 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택배과로사대책위원회 등이 구성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회원 중 정작 문제가 된 야간배송에 종사하는 택배기사들은 보기 힘들다. 며칠 전에는 사회적 대화 기구 회의에 찾아 간 택배기사 비노조연합 대표가 회의 장소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다.

새벽 배송 금지를 제안한 민주노총 택배노조에서 새벽 배송 기사는 극히 낮은 비율이라고 한다. 또한 민노총 택배노조 회원은 약 10만 명 정도로 추산되는 전국 택배기사의 10%에도 못 미친다.

나아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새벽 택배기사들이 오히려 새벽 배송 금지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정부의 택배 서비스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새벽 택배기사들의 업무 만족도는 91% 이상으로 매우 높으며 이와 비슷한 비율로 택배기사들은 새벽배송이 지속되기를 원하고 있다.

이렇게 대다수의 택배기사들이 여당 주도의 ‘사회적 대화’에서 배제되고 있다면,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가 과연 누구를 대표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보다 사회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정부 정책이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것이라고 하면 그것은 도덕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리고 개인은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까지도 ‘사회’를 위해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 정책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것을 입안한 정부가 아니라 그 실체가 불분명한 ‘사회’가 떠맡게 된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는 정권이 자신의 정책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결과에는 책임지지 않으려는 하나의 허울 좋은 꼼수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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