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이정민

최근 한동안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한국형 랠리’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그 상승의 배경에는 단순히 유동성이나 실적 개선만이 아니라,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정부가 연기금과 공적 자금을 동원해 ‘주주환원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하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특히 국민연금공단 등 대형 연기금이 주주권 행사와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축으로 떠오르고,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스튜어드십 코드의 확대다. 정부와 여당은 최근 이 스튜어드십 코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이행 책임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란 연기금이 기업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명분은 ‘주주의 책임’과 ‘기업의 지속가능성’이지만, 실질은 연기금을 통한 정책적 통제 강화다. 국민연금이라는 거대한 공적 자본이 정부 기조에 따라 노동·환경 친화 정책을 밀어붙일 경우, 시장은 자유로운 기업의 장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개입된 실험장이 될 수 있다.

아니나다를까 "국민연금 올해 사상 최대 수익", "세계 주요 연기금 중에서도 유례없는 성과" 등 자화자찬성 기사가 연이어 보도되고 있다. 국민연금 역할을 크게 부각하며, 연기금 주도의 시장 및 기업 개입 확대에 대한 담론적 기반을 제공하는 분위기로 읽힌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본래 목적은 기관투자자가 수탁자 책임으로서 투자기업의 장기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영 참여 및 권리 행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공적 스튜어드십’이란 특수한 형태로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 스튜어드십 코드로 연기금과 정부가 기업 경영 개입의 지렛대를 확보하게 되면, 기업은 자율적 선택보다는 정책적 정합성에 맞춰 움직이게 될 수 있다. 즉 정부가 노동 중심의 경영 같은 추상적 가치를 내세우면, 실제 기업 경영은 그 방향에 맞춰야 하는 압박을 받는다.

5일 코스피 4000선이 무너지며 급락했다. 코스피 상승이 지속되려면 시장의 신뢰와 기업의 자율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연기금이 정부의 확장된 팔이 되어 기업 의사결정에 개입한다면, 주가의 안정성은 오히려 흔들릴 수 있다. 정치적 주가 관리가 단기적으로는 호재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투자자 신뢰를 약화시키고 기업의 리스크 회피 본능만 키운다. ‘국민연금이 감시하는 기업’이 아니라 ‘국민연금이 통제하는 기업’으로 비칠 때, 시장은 그 기업을 혁신의 주체로 보지 않는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현 정부의 스튜어드십 코드 확대와 관련해 기업의 자율성과 안정성을 훼손하지 않도록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연기금이 그 경계선을 넘는 순간, 한국 자본시장은 더이상 자유시장이라 부를 수 없게 된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투자자의 책임’을 위한 제도인지, 아니면 ‘정부의 통제’를 위한 장치인지 따져봐야 할 시기다. 코스피의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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