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형
이충형

‘韓中 "전략적 소통 강화" 관계 개선 실마리’ 3일 월요일 자 동아일보 1면 머릿기사 제목이다. 윤석열 정권 말기 기사로 연일 정부에 저주를 퍼부으면서 현 이재명 민주당을 노골적으로 밀어주던 그 신문이다.

제목은 두 부분으로 나뉜다. ‘전략적 소통 강화’에서 전략적이란 표현은 자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맞는 선에서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다분히 계산적인 함의를 담고 있다. 공식적인 ‘동맹국’ 간에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하지만 독자 대중에게는 ‘앞으로 더 잘 지내기로 했다’는 정도로 이해될 것이다. ‘관계 개선 실마리’라는 표현은 이번 한·중 회담 결과를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보고 싶다는 희망 사항이 담뿍 반영된 것으로 읽힌다.

이은 소제목에선 ‘70조 통화 스와프…경제 협력 MOU’를 언급했다. 정확히 표현하면 통화 스와프는 이번에 처음 체결한 것이 아니고 기한을 연장한 것이다. 중국은 그동안 자국 위안화를 미국 달러화에 버금가는 준기축통화 반열에 올려놓기 위해 노력해 왔고 이번 한·중 스와프 연장도 그 일환이다.

경제 협력 MOU는 정상회담이라는 위상에 걸맞은 상징적 액세서리다. ‘양해각서’(Memorandum of Understanding)라는 용어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이후 실행 단계에서 어그러지기 일쑤인 것이 MOU다. 아마 중국은 이번에 체결한 MOU들을 한국을 다룰 레버리지로 활용할 것이다. 아쉬운 쪽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중국은 1996년부터 외교관계의 친소에 따라 협력 동반자·건설적 협력 동반자·전면적 협력 동반자·전략적 동반자·전략적 협력 동반자·전면적 전략적 동반자 6단계를 적용해왔다. 한국은 1992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정식 수교를 맺은 후 이명박 대통령 시절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까지 격상시켰고 이후 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번 시진핑 주석의 국빈 방문에서도 이 위상을 넘어서진 못했다.

한·중 관계의 화양연화(花樣年華) 시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고 시진핑이 국가주석에 선출된 2013년부터였다. 갓 국가원수 직을 맡은 시진핑은 자국 국익을 위해 몸을 낮추고 주변의 중진국 외교에 공을 들였다.

특히 2014년 한국과 몽골에는 순방의 형식이 아닌, 이례적이고 과감한 단독 방문을 추진했다. 이 방문들을 두고 관영 인민일보는 ‘점혈식(點穴式) 외교’라 칭하면서 한국을 중국이라는 몸통 내 기(氣)의 흐름을 좌우할 ‘혈’ 자리라고 평가했다. 한국을 국빈 방문한 시진핑은 서울대 연단에서 강연을 했고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공식화했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중국은 한국의 미래를 좌우할 1순위 관심 국가였다. 2015년 전승절 70주년 경축 행사에 시진핑과 나란히 천안문 망루에 선 일은 그의 의지를 반영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행보는 동맹국 미국의 의구심을 초래했고 미국은 여러 비공식 경로로 한국에 이 의구심을 표명했다. 결국 2016년 사드 배치가 박 대통령의 입을 통해 발표됐고 중국은 ‘이참에 한국의 기강을 잡겠다’는 듯 ‘한한령’(限韓令) 쓰나미를 몰고 왔다.

뒤이은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에 납작 엎드리는 자세를 취했지만 국빈 방문에도 불구하고 ‘혼밥’ 굴욕을 당해야 했다. 윤석열 정부는 그간 얼어붙은 한·중 관계에 새 청사진을 제시하려 했지만 야권의 어깃장과 탄핵 사태로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다.

이런 점에서 갓 태어난 이재명 정권은 한·중 관계에 절호의 기회를 타고났다. 이미 유치가 확정된 APEC 정상회담을 이용해 시진핑이 11년 만에 한국 땅을 밟도록 만들 수 있었다. APEC 회담 참석을 위해 방문하는 타국 정상에게 국빈 방문이란 영예를 얹어주는 사례는 극히 이례적이다.

앞으로 지켜볼 점은 향후 한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다. 중국이 한국을 봉건주의 시절 제후국 대하듯 한 등급 아래로 내려다본 지는 한참 전부터다. 박근혜 후반기부터 중국 외교부장(장관 격)이 방한하면 당연한 듯 한국 대통령을 만났지만 한국 외교장관은 시진핑과 면담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제1당 대표가 국장급 외교관밖에 안 되는 중국대사를 찾아가 충고와 훈계를 듣던 이재명을 생각한다면 앞으로 중국이 한국을 존중할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