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북핵 위기는 1993년 북한이 NPT(핵 비확산조약) 탈퇴를 선언한 후 1994년 미-북 제네바 합의까지다. 한·미·일 등 국제사회가 경수로 2기 및 매년 중유 50만 톤과 식량을 북한에 제공키로 했다.
북한이 이 약속을 배반하고 농축우라늄 핵을 몰래 개발하다 미국에 들킨 해가 2002년이다. 그해 10월 제임스 켈리가 평양에 가서 핵개발 관련 증거를 들이밀자, 강석주 외교부장은 "그래 맞다. 우리는 그(농축 우라늄 핵)보다 더한 것도 있다"며 배째라는 식이었다. 북핵 문제가 1차로 수렁에 빠졌다.
북핵이 두 번째 수렁에 빠진 해는 2006년이다. 북한의 농축 우라늄 핵개발 때문에 2003년 남과 북, 미·일·중·러의 6자회담이 시작됐다. 2년여 씨름 끝에 2005년 9월 19일 북핵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 해결을 위한 9·19 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북핵이 해결되는 줄 알았지만 북한은 9·19 공동성명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어서 북한이 제조한 100달러짜리 가짜 슈퍼노트가 발견되고 김정일이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숨겨놓은 비자금이 동결되자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북핵이 제2차 수렁에 빠진 해다.
이때부터 북한은 2017년까지 핵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섞어 6차 핵실험까지 끝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대륙간탄도미사일에 러시아 기술 지원을 받아 극초음속미사일까지 쏴대고 있다.
22일 이재명 대통령과 김정은의 발언을 종합하면 북핵이 곧 제3차 수렁에 빠질 것 같다. 이 대통령은 미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중단시킨 후 군축, 그리고 나서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요구 사항은 비핵화가 아니라 소위 ‘군축 협상’이다. 김정은은 "우리의 핵보유를 인정하면 미국과 대화가 가능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북한은 1993년 제1차 핵위기 조성 때부터 지금까지 22년간 한순간도 핵을 포기한 사실이 없다. 반드시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일관된 목표를 갖고 핵개발을 추진해왔다. 북핵이 수렁에 빠진 결정적 이유는 한·미 정부가 북한과 협상을 잘하면 핵을 포기할 것이라는 어리석은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번에 한·미가 제3차 북핵 수렁에 빠져들면 그 다음 북한의 선택은 공포의 대남 ‘핵 그늘’(nuclear shadow) 전략을 시작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