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없는 눈·가녀린 목에...인간 영혼의 슬픔을 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 1884~1920)는 비극적인 삶과 길쭉하게 변형된 인물 묘사로 유명한 화가이다. 모딜리아니의 인물화는 전통적 사실주의나 인상주의에서 벗어나 있다. 단순히 스타일의 실험이라기보다는 연약하고 고독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물화 속 가늘고 길게 늘어진 목, 얼굴, 눈동자 없는 텅 빈 눈은 덧없는 인간의 삶과 영혼을 응시하는 듯하다. 모딜리아니 작품을 한마디로 명명하면 비극적 아름다움이다.

잔 에뷔테른 초상화.

고대 미술양식 적용 독특한 스타일

모딜리아니는 인물의 외형적 아름다움보다 인간 내면의 정신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모딜리아니는 "내가 추구하는 것은 사실이나 허구가 아닌 무의식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에 비추어볼 때 모딜리아니가 추구한 예술은 사물이나 자연이 중심이 된 현실의 재현이 아니라 인물에 중점을 두고 모델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맞춰져 있다.

모딜리아니는 화가로 잘 알려져 있지만 회화를 시작하기 전에 조각가로 활동했다. 당시 파리 예술가들은 무슨 유행처럼 고대 이집트·그리스·아프리카 가면조각의 영향을 받아 작품에 반영했는데 모딜리아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고대의 조각들은 인체의 비례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형태를 단순화하고 본질을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모딜리아니의 인물화에서 보이는 길고 가느다란 목, 좁은 어깨, 아몬드 모양의 눈 등은 고대 미술양식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잔 에뷔테른 초상화.

인물화에 조각적 요소 결합

모딜리아니는 14세부터 본격적으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22살에 당시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파리로 이주해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 이미 파리에서는 피카소와 마티스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파리는 마치 창조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같았다.

모딜리아니는 자유로운 몽마르트 분위기 속에서 예술혼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기라성 같은 화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의 스타일을 모색했다. 모딜리아니는 특히 폴 세잔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다. 세잔의 작품에서는 인물 형태가 단순화되어 본질에 보다 접근하고 있었다.

회화를 시작하기 전 조각가였던 모딜리아니는 인물화에 조각적인 요소를 결합하는 시도를 했다. 당시 루마니아 출신 조각가 브랑쿠시는 복잡한 장식적 조각에서 벗어나 형태를 단순화하는 모던 아트 조각의 길을 열고 있었다. 모딜리아니는 조각을 통해 얻은 조형 언어를 회화에 적용하며 ‘모딜리아니 양식’이라 불리는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했다.

모딜리아니 자화상.

술과 약과 병으로 피폐한 삶

이탈리아 리보르노 지방의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모딜리아니는 병약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청소년기에 폐렴과 장티푸스, 결핵을 앓아 생사를 오가기도 했다.

모딜리아니는 평생을 병마와 싸우며 살았는데, 특히 결핵은 그의 예술세계와 작품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결핵은 당시 죽음의 병으로 불렸고 죽음은 모딜리아니의 일상과 의식을 지배했다.

생명이 내일 당장 끝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은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모딜리아니는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직감했고, 그런 이유로 화가로서 상업적 성공보다는 자신만의 순수한 예술세계로 빠져들었다.

예술세계가 무르익는 것과는 정반대로 모딜리아니의 삶은 피폐해졌다. 만성질환과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며 예술혼을 불태웠지만 화상(畵商)들은 아무도 그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모딜리아니와 그의 뮤즈 잔 에뷔테른.

죽음까지 함께한 뮤즈 잔 에뷔테른

술과 마약에 의지해 삶을 지탱하던 모딜리아니는 아카데미 콜라로시에서 미술을 공부하던 잔 에뷔테른을 만나 불 같은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가톨릭 신앙을 가진 중산층 가정 출신이었다. 잔은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딜리아니와 동거를 시작했다. 잔은 부드럽고 밝은 색채와 선이 특징으로 자화상과 주변 인물 초상을 주로 그렸다.

애당초 불안하게 출발했던 두 화가의 동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모딜리아니는 1920년, 35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려서부터 폐결핵을 앓았고 가난한 생활 속에 술과 마약에 의지해 살면서 결핵성 뇌막염이 악화됐다. 잔은 모딜리아니가 세상을 떠나자 깊은 슬픔에 빠졌고, 둘째 아이를 임신한 몸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잔의 가족들은 그녀의 죽음을 모딜리아니 탓으로 돌려 모딜리아니와의 합장을 반대했다. 잔이 죽은 뒤 약 10년 후에야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 합장을 승낙했다.

모딜리아니의 예술은 인간 존재의 영혼을 선과 색으로 승화시킨 우아한 단순미로 정의할 수 있다. 그의 화폭은 육체의 그림자가 아니라 영혼이 머무는 긴 선율이며, 인물들은 현실의 얼굴을 벗고 영원의 침묵 속에서 인간 존재의 비밀을 노래한다. /박문경 문화비평가

모달리아니 대표작

● ‘잔 에뷔테른 초상화’ 연작

연인이자 뮤즈였던 잔을 그린 초상화 연작. 모딜리아니는 잔을 주제로 작품 수십 점을 남겼다. 배경과 인물의 경계를 극도로 단순화시킨 캔버스에 길게 뻗은 목, 타원형 얼굴, 비어있는 눈동자가 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모딜리아니에게 잔은 단순한 모델이 아니었다. 그녀의 존재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 초상화 연작들은 그들의 사랑을 증명함과 동시에 그들의 비극적 삶을 상징한다.

● ‘누워있는 나부(裸婦)’

당시 누드화의 관습을 깨고 모델의 얼굴과 내면을 함께 표현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존 서양 회화의 누드화가 관능미를 과시하는 데 그친 반면, 모딜리아니는 모델의 감정을 길고 단순화된 형태로 담아냈다. 왜곡된 신체와 비어 있는 듯한 눈은 관람자를 응시하고 있어 육체를 넘어 인물의 깊은 내면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2015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7040만 달러에 낙찰되어 모딜리아니 작품 중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 ‘청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

그의 초상화에서 자주 보이는 긴 얼굴, 아몬드 눈, 간결한 색면 배치 등 모딜리아니 양식이 집약된 작품. 이 작품의 특징은 눈동자가 푸른색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모딜리아니가 자주 사용하던 비어 있는 눈동자 대신 인물의 정체성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 예외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모딜리아니는 눈을 영혼의 창이라 여겨 종종 비워 두었는데, 이 작품에서만큼은 눈으로 나타난 내면을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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