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와 수술로봇의 앞날
요즘 수술실에선 다빈치 같은 로봇이 수만 건의 데이터를 쌓으며 웬만한 명의보다 더 정밀한 외과수술을 하고 있다. CT나 MRI 영상을 3D로 바꿔 수술 경로를 안내해 주고, 반복적인 작업은 AI가 맡아 외과의사를 보조하는 일이 늘었다. 하지만 환자마다 다른 상황이나 갑작스러운 변수, 책임 문제 같은 건 아직 로봇이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 의사가 바로 대체될 수는 없다. 당분간 AI와 로봇은 의사의 ‘협력자’로 남아 있을 것이지만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직업 최상위권인 의사 위협
AI는 어느새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들었고, 로봇과 드론은 인간의 역할을 점차 대체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기술 발전은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높여주지만, 동시에 인간의 상대적 무력감도 함께 키우고 있다.
19세기 초 영국에서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 일어났다. 당시 나타나기 시작한 방직기가 노동자의 일거리를 줄인다는 생각으로 일어난 기계 파괴 운동이다. 현대에는 AI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 ‘네오 러다이트’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네오 러다이트까지는 아니더라도, 많은 교육자들이 학생들에게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진로나 직업을 택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라는 직업은 직업계급도에서 최상위에 위치해 있다. 인기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는 의대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걸고, 심지어 인간성마저 상실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한국 사회에서 의사가 되는 것이 얼마나 상징적이고 절대적인 목표인지를 보여준다. 이처럼 위계의 정점에 있는 직업에 AI나 로봇 기술이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술에서 이미 외과의사보다 정확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자신의 SNS를 통해 "로봇이 5년 안에 최고의 인간 외과의사를 능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머스크가 설립한 뉴럴링크는 인간이 해내기 어려운 속도와 정밀도를 갖춘 수술 로봇을 개발해 외과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밝혔다. 특히 뉴럴링크의 텔레파시 칩은 지름 23㎜, 두께 8㎜에 불과할 정도로 미세한데, 이를 뉴럴링크의 수술로봇 R1이 빠른 속도와 높은 정밀도로 뇌에 삽입해 수술을 마쳤다.
이처럼 고도화된 수술로봇은 인간 외과의가 수행하기 어려운 정밀한 영역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AI와 로봇은 직업계급의 최상위 영역마저 위협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머스크 발언을 두고 과장이라는 비판도 있다. 머스크 특유의 관심 끌기 전략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와 로봇 기술의 빠른 진보를 감안하면 머지않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로봇이 수술실에 들어오기까지
의료 분야에 로봇 기술이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 최초로 의료 로봇을 활용한 것은 1985년 외과수술에서다. 당시 뇌 조직 검사에서 정확한 바늘 위치를 잡기 위해 산업용 로봇인 PUMA 560이 보조 역할을 했다. 군사 분야에서는 미국 국방부가 전쟁 중 부상당한 병사를 치료하기 위해 장갑차에 로봇을 장착하고 원격수술(tele-surgery)을 시도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원격수술은 NASA와 스탠퍼드대학의 연구로 더욱 발전했다. NASA 연구원들이 개발한 수술용 로봇은 걸프전에서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됐다.
민간 의료 분야에서는 1994년에 AESOP 로봇팔이 미국 FDA 승인을 받아 복강경 수술 카메라 조작에 최초로 도입됐다. 2000년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사에서 개발한 ‘다빈치 수술 시스템’이 FDA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로봇수술 시대를 열었다. 이후 일반외과를 넘어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 다양한 분야로 빠르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AI 접목으로 더 강력해진 수술 로봇
최근 로봇 수술에 AI 기술이 접목되고 있다. 초창기 로봇은 정밀한 수술도구에 불과했으나 이제는 카메라 영상 처리, 자동화된 보조 동작, 수술 데이터 분석 등 보다 지능적인 기능들이 추가됐다.
예를 들어 영상 인식 AI는 수술 부위의 장기나 혈관을 자동으로 식별해 화면에 표시하거나, CT나 MRI 영상을 딥러닝 기반으로 분할(segmentation)해 3차원 모델로 구현한다. 이를 통해 수술 전 최적의 수술 경로를 계획할 수 있다.
일부 현대식 수술 로봇에는 센서와 AI 알고리즘이 내장되어 있어, 수술 중 실시간으로 상태를 분석하고 외과의에게 피드백을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인튜이티브 서지컬의 지능형 스테이플러(봉합용 기구)는 AI 기반 센서를 통해 조직을 압박하는 힘을 초당 수천 회씩 측정한다. 이로 인해 보다 정확하고 안정적인 봉합이 가능해졌다.
수술 로봇 시스템이 수술 진행 상태를 자동으로 인식해 다음 단계에 필요한 기구나 조치를 제안하거나, 수술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을 미리 경고하는 연구 역시 활발히 진행 중이다.
이러한 AI 보조 기능들은 외과의의 수술 숙련도를 높이고 환자 맞춤형 수술 계획 수립에 기여하며 앞으로 발전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다만, 현재 상용화된 수술로봇들은 여전히 ‘마스터 슬레이브’(master-slave), 즉 주종 방식으로 작동하며 최종 결정권은 인간 의사에게 있다.
자율수술 로봇, 돼지 봉합수술 성공
일부 연구실에서 개발된 프로토타입 로봇 중에는 부분적으로 자율동작을 수행하는 사례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6년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팀이 개발한 스마트 조직 자율로봇(Smart Tissue Autonomous Robot·STAR)은 2022년 돼지 장기 봉합수술을 자율적으로 성공시켜 주목을 받았다. STAR는 2016년 돼지 내장수술에 성공했으나 당시에는 복강경 대신 개복이 필요했고 인간 의사의 도움도 필요했다. 2022년에는 수술 영역을 정확하게 시각화할 수 있는 특수 봉합도구와 영상 시스템이 장착됐으며 3차원 내시경과 AI 추적 알고리즘이 적용돼 로봇 자율수술에 성공했다.
이는 완전 자율수술 로봇이 미래에 가능하다는 것을 시사한 의미있는 사례였다.
인간 의사는 더욱 인간적이어야
AI와 로봇이 부분적으로 의사 역할을 대체하는 흐름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인간 의사는 AI가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인간성 영역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
인간 의사는 단순히 진단과 치료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라포(rapport:인간관계)를 형성, 환자의 아픔에 공감하고 환자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해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예를 들어 의학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능력과 넉살, 오지랖을 모두 겸비한 조정석처럼 말이다.
결국 AI가 의사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 능력을 극대화하고 AI와 로봇 기술을 적극 활용할 줄 아는 의사가 그렇지 못한 의사를 대체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