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소고기와 쌀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 등의 속담도 있다. 예로부터 소는 가축이며 자산이었다. 과거 우리나라는 낙농업이 발달하지 못해 소가 귀했기 때문이다.
쌀은 계량이 쉬워 교환수단으로 쓰이기도 했다. 한국인의 주식은 쌀인데 쌀이 부족했다. ‘이밥(쌀밥)에 소고기국’은 1년에 한두 번 명절 때나 가능했다.
관세협상이 타결됐다. 소고기와 쌀 때문에 시끄럽다. ‘큰 고비’를 넘었다고 표현하는데 실은 이제 교섭이 시작된다. 재밌는 건, 합의 내용을 놓고 한국과 미국의 발표가 약간 다르다. 한국은 소고기와 쌀에 대해 추가적 개방이 없다고 단언하는 반면 미국은 ‘역사적 개방’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관세는 15%. 일본과 숫자를 맞췄다. 중요한 사실은 한국은 원래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을 해왔지만 일본은 2.5%의 관세가 적용됐었다. 무관세의 근거였던 한미 FTA는 사실상 해체됐다.
여기서 짚을 게 있다. 시장이 개방된다 해도 소고기와 쌀 가격이 폭락할 가능성은 낮다. 각 제품의 수요가 일정하게 주어지는 ‘독점적 경쟁’ 상황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한우와 국산 쌀도 지역 브랜드를 따라 차별성이 있다. 즉 어디에서 생산됐느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국적이 다르면 어떻게 될까? 가격차가 더 커진다. 지금 당장 마트에 가서 가격을 비교해보기 바란다. 한우와 수입 소고기의 가격 차가 매우 크다. 수입 소고기들 간에도 국적에 따라 가격이 또 달라진다.
‘시장 개방’이란 수입 금지를 하지 말라는 뜻이지 강제로 사라는 뜻이 아니다. 수입과 수요는 다르다. 이미 ‘광우병 선동’으로 한국인들은 수입 소고기에 대해 편견을 갖는다. 수요가 없으면 수입도 큰 의미가 없다. 이 마당에 30개월 월령을 기준으로 수입 장벽을 쌓는 건 부질 없는 일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정확한 원산지 정보 공개다. 국민소득 수준이 높아질수록 ‘럭셔리’ 재화 그리고 ‘친환경’ 식료품 수요가 많아진다. 쌀도 마찬가지다. 국산 쌀이 안 팔린다면 비싸기 때문이 아니고 한국인의 식문화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시장보호 조치로 농민들이 정말 부자가 됐나? 문제의 본질은 겉도는 농축산 행정일 수도 있다. 관료들 대부분 한국 농업 현실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거니와 농심(農心)과 교감도 거의 없다. 뜬구름 잡기식 탁상행정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소고기 수입 때문에 한우 가격이 내려갔나? 더 올랐다.
정말 농가소득을 위한다면 국산 농축산물 공급 방식을 바꿔야 한다. 각 단계마다 거래비용이 발생한다. 최종수요 단계에서 국산 농축산물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최종수요자는 비싼 값을 치르게 되고, 높은 국산 농축산물 가격은 물가상승 요인이 된다. 대안은 최종수요까지 단계를 줄이는 것이다.
높은 농축산물 가격이 농가소득 향상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농가도 최종수요자이기 때문이다. 물가상승 폭에 따라 농가의 실질소득이 오히려 낮아질 수도 있다. 폐쇄적인 공급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우왕좌왕할 때가 아니다. 과거 문화시장 개방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때에도 시장 개방 하면 한국의 문화산업이 완전 붕괴될 것으로 우려했다. 결과는 반대였다. ‘한류’가 등장하는 계기가 됐고 지금 전성기를 맞고 있다. 농축산물도 마찬가지다. 지혜를 잘 발휘하면, 한국 농축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기회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아프리카에 히터를 팔고, 북극에 에어컨을 파는 게 진짜 비즈니스다. 한국 농축산물을 위한 수출시장이 있다. 시장보호만이 능사가 아니다. 싸다고 잘 팔리고 비싸다고 안 팔리는 시대가 아니다. 명품은 비싸서 잘 팔린다. 농축산물의 품질 차별화가 관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