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구세군 서진주교회 안상준 사관
구세군교단의 구제와 선교 중심 체제에 매료
자선냄비 활동 넘어 사회복지시설 설립 동참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때 만족함이 없었네. 나의 하나님 그분을 뵐 때 나는 만족하였네."
구세군 서진주교회 안상준 사관이 즐겨 부른다는 찬양 <만족함이 없었네>의 가사처럼 그는 세상이 주는 만족보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가 걸어온 삶의 여정은 복음과 구제, 섬김의 정신이 얼마나 강력한 사명으로 사람을 이끄는지를 보여준다.
지난 19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를 진행한 안상준 사관은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걸어온 믿음의 인생길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이야기했다. 웨슬리 신학을 따르는 구세군 교단의 사관으로 부름받은 그는 성결대학교 해외선교학과와 선교대학원, 미국구세군사관학교 신학과를 졸업했다. 자라면서 목회자가 되길 서원했지만 처음부터 구세군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안 사관은 "구세군교회는 내가 살던 동네에는 없었다. 기독스쿨 고등학교를 다닐 때 구세군 군복을 입은 선생님을 만나고, 자선냄비와 전도를 접하며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서술했다.
그의 신앙 여정은 군종병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교회를 지키는 일, 사람들의 필요를 돌아보는 일에서 복음의 실제를 배웠고, 구세군이라는 교단이 가진 구제와 선교 중심의 체계에 점점 매료됐다. 그리고 결혼과 함께 부부가 사관으로 임관(목사안수)을 받았다.
현재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경남 진주 지역은 구세군 교단에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6·25전쟁 당시 노영수 사관이 교회를 지키다 순교한 곳이 바로 진주다. 안 사관은 이 역사를 기억하며, 진주를 구세군의 성지로 세우는 사역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현재 구세군의 자선냄비 활동을 넘어 사회복지시설 설립을 위한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안 사관은 서진주교회 성도들과 함께 최근 산청 산불 피해현장을 방문해 구세군 밥차 사역을 돕고 현장을 지켰다. 5톤 규모의 밥차로 150인분씩 세 끼를 조리하고, 거동이 불편한 이재민들을 위해 도시락 배달까지 책임졌다. 이는 단순한 구호 활동을 넘어 상처받은 이웃을 품으려는 복음적 돌봄이었다.
재해현장에 간 건 처음이라고 밝힌 안 사관은 "예배 준비도 병행하면서 매 끼니마다 현장을 누볐다. 식사가 잘 넘어가지 않던 이재민들이 점차 웃음을 되찾는 모습을 보며 참된 섬김의 의미를 느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역을 통해 긴급 구호의 본질을 다시금 확인했다. 사명은 준비된 자보다 결단한 자가 먼저 가야 한다는 것. 이는 구세군이 언제나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자리를 잡는 전통과도 맞닿아 있다.
안 사관은 "우리 교회가 잘 되고 우리 교단이 부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서 "교회 안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이웃을 돌아보며 예수의 향기를 전하는 이들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복음은 삶으로 증명되어야 한다’는 안 사관의 말에는 복음과 구제라는 두 사명의 축을 따라가는 구세군 사관으로서의 다짐이 묻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