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서민

"대통령은 국민이 투표로 뽑는다. 대법(원)이 국민 참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한다면 국민이 용서치 않을 것이다. 대법은 헌법 정신을 지켜라." 민주당 정청래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범법의 상징인 민주당 최고위원이 대법원더러 법을 지키라니, 이 무슨 황당한 말일까? 저들도 민망하니 추상적으로 말했지만, 속내는 해파리처럼 투명하다. 대법원이 이재명 재판을 서두르지 말라는 것. 헌법 제84조에 따르면 대통령에게는 형사상 불소추 특권이 있다. 외환 혹은 내란죄를 범했을 때를 제외하곤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갑자기 형법 84조가 중요해진 이유는 다 이재명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기소돼 재판을 받는 이가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적이 없었다. 그게 당연한 것이, 곧 감방에 들어갈 예비범죄자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우는 정신 나간 정당이 없었기 때문이다. 네거티브 선거운동, 즉 선거기간 중 상대 후보의 흠집을 들춰내는 전략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그런데도 네거티브가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도덕적 결함이 있는 후보가 당선돼 권력을 쥐는 게 국민에게 손해가 된다는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힘이 없던 시절에도 온갖 악행을 저지르던 이가 권력까지 쥐게 된다면 무슨 짓을 할지 상상만으로도 무섭잖은가?

그래도 2022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이재명을 후보로 낸 것은 이해할 구석이 있다. 그때까지 알려진 이재명의 범죄들은 잡범 수준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형사처벌이 이루어진 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에 대해 검증이 이루어지면서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를 지내는 동안 대장동 개발 관련 의혹, 성남FC 후원금 의혹, 법카 유용 혐의도 있다. 대선 이후 ‘방북을 위해 쌍방울에게 대북송금을 시켰다’는 의혹까지 추가로 드러나, 이재명은 No. 8512, 즉 8개 사건에서 12개의 범죄혐의가 발견돼 5개의 재판을 받고 있는 예비 중대범죄자가 됐다.

민주당이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이런 이를 또다시 대선후보로 내세우는 대신 당에서 축출시켰을 테지만, 대선 이후 벌어진 일들은 세간의 상식을 벗어난 수준이었다. 송영길의 지역구였던 곳에 출마해 국회로 진입한 이재명은 당을 완전히 장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조기 대선의 유력한 후보가 됐다.

더 기이한 사실은 그가 관여된 재판이 한없이 지연됐다는 것. 현재까지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온 재판은 하나도 없으며, 대장동과 대북송금, 법인카드 유용 등에 대해선 아직 1심 판결도 내려지지 않았다. 헌법 84조의 불소추 특권이 기존 재판도 중단된다는 의미인지 여부가 쟁점이 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여기에 관해 판단해줘야 할 사법기관들마저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3월 26일 공직선거법 2심 재판부의 무죄선고는 이재명에게 남은 마지막 걸림돌을 치워준 느낌이었다.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두 달 남짓, 그 기간 내에 대법원이 판결을 내리는 건 어려워 보였으니 말이다. 모든 대법관이 판결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결정됐기에 그 가능성은 더 희미해졌다. 조국의 경우만 봐도 2심에서 대법원 판결까지 10개월이 넘게 걸렸잖은가.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 22일 첫 심리를 열었던 대법원이 이틀 만에 두 번째 심리를 연 것. 기사에 따르면 "한 주일에 두 번 전원합의를 하는 사례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이 추세라면 대선 전 결론을 내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듯하다.

이재명도, 그리고 민주당도 잘 알고 있다. 우주의 온갖 악한 기운이 이재명을 지켜준 듯한 2심 무죄판결이 대법원에서도 재현되긴 힘들다는 것을. 

법의 최종 수호자여야 할 대법원은 아쉽게도 문재인 정권 때부터 부쩍 정치화돼,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그런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 달라는 마지막 미션이 주어졌다. 협박에 굴하지 말고 소신껏 행동해 주길 빈다. 이재명이 당선되면, 대법원이 수호해야 할 법은 더이상 없을지도 모르니까.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