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산의 약속’이란 게 있다. 24년 전인 2001년 9월 NL(민족해방) 주사파 요인들이 충북 괴산 군자산에 모여서 다짐한 3단계 종북 투쟁 목표다. 민노당에 들어가 3년 내 당권 장악하고, (민주당과 손잡고) 10년 내 정권 쟁취한 다음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한다는 것이다.
노회찬·심상정을 밀어내고 민노당을 수중에 넣은 주축이 저 유명한 이석기의 경기동부연합이다. 이 주사파 분파의 근거지는 성남, 시장 이재명이 이들과 사이가 각별했다. 그는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에서 ‘군자산’들을 비례 위성 정당 당선권에 포진시켜 대거 여의도로 진출케 했다. 김정은의 통일 전선 포기로 방황하던 친북·종북 인사들에게 동아줄을 내려 줬다는 얘기가 그때 나왔다.
‘군자산의 약속’은 운동권 학생들이 잽만 날리는 거리 투쟁 일변도에서 제도권에 진출해 진짜 큰 걸 잡는 쪽으로의 전략 수정이었다. 군자산 말고 북한에서 직접 오더를 내리기도 했다. 그래서 운동권 다수가 별 갈등 없이 고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다. 중고 교사, 대학 교수, 지방과 중앙 행정 기관은 물론 언론계·사법부로 진출했다.
오늘날 후안무치로 사법부가 타락하고 진영 판결을 예사로 하게 된 배경의 하나가 주사파의 이 제도권 장악이다. 민주당은 87체제 수립 이후 40년 내내 이 작업을 직간접적으로 지휘했다. 언론이 이들 손에 넘어간 대표적인 권력 집단이다.
법원도 60~70%가 이들 품에 들어갔다. 문재인이 지방법원장 출신에 전임보다 저 아래 기수인 김명수를 대법원장에 앉히면서 그 작업이 거의 완성됐다. 김명수는 법원 내 사조직(하나회) 우리법-인권법 모임 판사들을 요직에 배치하고 인사 제도도 그들 편에 유리하게 바꿨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라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것은 대학 총장 직선제나 신문사 편집국장 직선제와 비슷한 편가르기 포퓰리즘이다. 실력과 덕망보다는 사내 정치와 돈이 해당 직종 최고 지위와 명예를 가져다준다. 문재인 정권은 이 작업을 집요하게 해 왔고, 그 잔당들이 아직도 건재하다. 조희대는 사실상 허수아비다.
법원 판사들 ‘질’이 우리 모두가 요즘 보는 것처럼 진영 치어리더 급으로 전락한 배경에는 법관 채용 방식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과거 사시 합격자들은 사법연수원 성적순으로 판사-검사-변호사로 갈 길이 나뉘었다. 철저하게 공개적인 엘리트 선별 육성 방식이었다.
문재인과 김명수는 이걸 ‘민주적’으로 바꿔 버렸다. 하향 평준화다. 1, 2등이 사법연수원에서 법원으로 직행하지 못한다. 변호사 경력 10년(이후 5년으로 단축) 이상만 법관 채용 고시에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게 왜 중요한가? 바로 운동권-변호사-판사로 이어지는 길을 터줬기 때문이다. 그러다 필기시험마저 없애고 지금은 면접만으로 뽑고 있다. 이러니 이제 법원은 서열도 없고 워라벨(공적 업무와 개인 생활의 균형)만 좇는 변호사 출신 ‘좌파 공무원’들의 세상이 됐다.
이들은 실력은 떨어져도 폼은 잡고, ‘정의의 사도’로 불리고 싶어한다. 그 정의는 법리와 상식이 아니다. 민주당 편을 드는 것이다. 그들의 선배이자 동료인 40~50대(이재명 항소심 재판부 판사 3명이 이 연령대다)는 전교조와 5·18에 물든 세대다. 이들이 그 거울이다.
이재명 무죄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사명감도 직업윤리도 없는 법원의 진영화, 비(非)엘리트화 산물이다. 3명의 판사들은 1심 판결 후 4개월여 동안 유죄를 무죄로 만들기 위한 짜맞추기 논리를 짜내는 데 골몰했다. 전체 맥락을 없애 버리는 문장 파편화, 행위가 아닌 인식이라거나 사실 공표가 아닌 의견 표명이라는 말장난을 동원했다.
위기가 쌓이고 있는 대한민국에 또 하나의 큰 위기를 사법부가 안고 있다. 나라의 모든 큰 문제들이 골병든 사법부로 몰려 그들의 구차한 판결을 구걸하고 있다.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만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