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너지부 건물. /연합

미국이 한국을 민감국가 명단에 올린 지 2개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한국 정부는 아직 그 배경조차 파악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외교부를 비롯한 관련 부처가 대응 방안을 조율하고 있으나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외교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DOE)는 전임 조 바이든 정부 시절이던 지난 1월 초 한국을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SCL)’의 최하위 범주인 ‘기타 지정국가’에 추가했다. 이는 목록은 다음달 15일부터 발효된다.

정부는 17일 현재까지 미국으로부터 한국이 SCL에 오른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주미대사관 등 채널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SCL을 미국 에너지부 특정 부서가 내부적으로 관리하다 보니 구체적인 설명을 듣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보안과 관련된 사안이어서 미 국무부조차 관련 정보를 파악하는 게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에너지부는 통상 국가 안보, 핵 비확산, 지역 불안정, 국가 경제 안보 위협, 테러 지원 등의 이유로 원자력·에너지·첨단기술 협력이 제한되는 민감국가를 지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단 정부로서는 민감국가 리스트에서 빠질 수 있도록 미국 관계기관 고위급 인사들을 지속적으로 접촉해 나갈 예정이다. 그럼에도 지정된 이유를 알아야 전략을 짜고 미국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설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당장은 실효적인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외교부 안팎에서는 지정 배경이 그간 거론됐던 한국 내 핵무장 여론 등 정치적 이유보다는 기술적 이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국전력·한국수력원자력과 미국 원전기업 웨스팅하우스 간 원전 기술 분쟁과 국내 핵무장론 확대, 12·3 계엄사태와 탄핵정국 등이 그 배경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 에너지부의 조처는 시설 방문 등에 적용되는 보안 규정이라며 "필요에 의해서 (기준을) 높이고 낮추는 기술적인 성격이 강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른 소식통도 "한미 협력에 큰 제한이 가해지는 건 아니고 다만 심리적으로 한국이 민감국가라는 카테고리로 분류됐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미국 에너지부도 한국의 SCL 지정과 관련해 양국간 에너지·원자력·핵 정책 관련 협력은 변함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실제로 한국과 미국은 지난 1월 ‘원전 수출 및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MOU에는 한·미 양국의 민간 원자력 기술 이전 시 정보공유 체계를 마련하는 내용 등이 담겼다.

그러나 이 문제가 국내 언론을 통해 처음 불거진 게 지난 10일임을 고려하면 정부가 1주일 넘게 배경을 파악하지 못하는 건 무능에 가깝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런 가운데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17일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안덕근 산업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 정인교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등과 대외경제현안간담회를 열어 "관계기관들이 미국 측에 적극 설명해 한·미 간 과학기술·에너지 협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해달라"며 "산업부 장관이 금주 중 미 에너지부 장관을 만나 적극 협의하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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