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훔친 '도둑'들 산업스파이와의 전쟁] ⑦ 산업스파이를 조장하는 기업문화

시리즈 목차

① 역사를 바꾼 산업스파이
② R&D보다 효율성이 높은 산업스파이?
③ 노트북을 사랑한 산업스파이
④ 노트북보다 사람을 더 사랑한 중국
⑤ 중국 제조 2025 (Made in China 2025)
⑥ 북한의 끊어지지 않는 샘물

⑦ 산업스파이를 조장하는 기업문화
⑧ 기술유출 내부자 프로파일링
⑨ 산업스파이, 걸려도 남는 장사?
⑩ 산업스파이와의 전쟁 

한국 기업은 전통적으로 상사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 위계질서, 평생직장 등 강한 조직적 유대감을 강조해 왔다. 이러한 기업 문화는 일면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내부 정보의 유출이나 기술 도용 같은 산업스파이에 취약한 요인으로도 작용한다. 특히 승진 실패에 대한 불만과 개인적 갈등은 기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기술 보호에 대한 경영진의 무관심과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보안 취약성을 더한다. 이는 기업 경쟁력뿐 아니라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국의 기업 문화는 기술 유출의 취약성을 안고 있다. 장기 근속·치열한 내부 경쟁 등이 그 원인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
한국의 기업 문화는 기술 유출의 취약성을 안고 있다. 장기 근속·치열한 내부 경쟁 등이 그 원인 중 하나다. /게티이미지

직급 중심 위계적 조직 문화

한국의 기업 문화는 전통적으로 직급 중심의 위계적 조직을 가지고 있어 승진이 개인의 경력과 직업적 성공에 큰 영향을 미친다. 승진을 통한 사회적 인정과 보상이 중요한 목표로 작용하며, 직원들은 승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승진에 탈락할 경우, 개인의 자존감과 직업적 안정성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동료나 후배가 상사가 되는 경우,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사임해야 하는 독특한 문화는 종종 갈등을 유발하며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든다.

과도한 승진 경쟁은 직장 내 분위기를 경직되게 만들며, 직원들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기 위해 비윤리적 행동에 나설 가능성을 높인다. 예를 들어, 승진에서 탈락한 직원이 복수심을 품고 기밀을 유출한 사건은 이러한 경쟁적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 결과 중 하나다. 승진 탈락은 개인의 자존감에 큰 타격을 줄 수 있으며 때로는 극단적 행동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23년 1월, 반도체 국가 핵심기술을 해외로 빼돌린 국내 대기업 및 중견기업의 전·현직 직원 6명이 검거된 사건은 이러한 상황의 단적인 예시다. 이 사건의 주범은 임원 승진에서 탈락한 것에 앙심을 품고, 이를 복수하기 위해 핵심기술을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승진 탈락이 개인적 불만을 넘어 기업과 국가 경제에 미치는 심각한 영향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로 인한 피해는 최소 1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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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근속 문화

한국 기업의 장기근속 문화는 산업스파이에 취약한 요소를 안고 있다.

첫째, 장기간 근무한 직원들이 축적한 지식과 경험이 특정 분야에 집중되어 기밀 정보 유출 위험이 커진다. 경력 많은 직원이 경쟁사의 제안을 받으면, 그가 보유한 기업 기밀이 유출될 가능성도 높다. 둘째,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직원들은 외부와의 교류가 줄어들며 정보 유출에 대한 경계심이 약해져 산업스파이 타깃이 될 수 있다. 셋째, 한국 기업의 문화에서는 장기근속을 통해 강한 신뢰 관계가 형성되는데, 과도한 신뢰는 외부 유혹에 악용될 위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장기근속은 직원에게 안정성을 제공하지만 퇴직 후 그동안 쌓은 지식과 기술이 유출될 위험도 높다.

최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임원을 지낸 최모씨가 삼성전자의 국가핵심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혐의로 구속됐다. 수사기관은 최씨가 유출한 기술의 가치를 최소 3000억 원에서 최대 수조 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2010년 최씨는 하이닉스 CEO 후보로 지원했으나 낙마하자 하이닉스를 떠났다. 당시 업계에서는 그가 해외업체로 이적할 경우 국내 산업에 미치는 피해를 우려한 바 있었다.

기술의 일부는 자기 것이라는 인식으로 거리낌없이 기밀 누출하는 이들도 있다. /챗GPT
기술의 일부는 자기 것이라는 인식으로 거리낌없이 기밀 누출하는 이들도 있다. /챗GPT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정적 문화

한국 기업은 위계질서와 권위 존중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이는 보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직원들이 의심스러운 활동이나 위반 사항을 보고하는 데 주저하는 이유는, 문제가 고위층에서 처리되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보안 문제나 비윤리적인 행위가 적시에 해결되지 않고, 산업스파이나 기밀 유출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한국 기업에서는 내부고발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한다. 고위층에 대한 충성과 복종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내부고발자는 ‘배신자’로 간주되며 불이익이 따를 수 있다. 이로 인해 직원들은 불법적이거나 부정적인 행동을 고발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기술의 일부는 자기 것이라는 인식으로 거리낌없이 기밀 누출하는 이들도 있다. /챗GPT
기술의 일부는 자기 것이라는 인식으로 거리낌없이 기밀 누출하는 이들도 있다. /챗GPT

최고경영자의 보안에 대한 무관심

중소기업에서 발생하는 기술 유출 피해는 대기업에 비해 중요성이 적어 자주 눈에 띄지 않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자원이 제한적인 중소기업은 기술 유출이 발생할 경우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작은 규모의 기업일수록 기술력이 핵심 경쟁력인 경우가 많아 기술 유출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

중소기업 CEO는 자본이 부족해 기술 보호보다는 생산과 판매에 집중하며, 보안 업무를 비용으로 인식하기 쉽다. 보안 시스템 구축이나 직원 교육에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아 보안 취약점이 커질 위험이 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영업비밀 유출 사건의 89%가 중소기업에서 발생했으며, 2023년에는 중소기업 기술 유출 사건이 130건으로 증가했다. 이는 CEO들이 보안에 대한 인식을 높이지 않으면 계속 피해를 입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3년 삼성 및 하이닉스 임직원이 반도체 국가 핵십기술을 빼돌린 사건이 발행했다. /연합
2023년 삼성 및 하이닉스 임직원이 반도체 국가 핵십기술을 빼돌린 사건이 발행했다. /연합

기술 유출범이 죄의식 느끼지 않는 문화

일반 범죄에서 피의자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고 인식하고 대부분 죄의식을 갖는다. 그러나 산업기술 유출 범죄의 피의자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때로는 자신이 범죄를 저지른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기술 유출범들이 자신이 개발에 참여한 산업기술에 대해 일정 지분을 가지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탈취하거나 이직 후 창업에 사용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은 종종 "이 기술은 내가 기여한 만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타인에게 무단으로 이전하는 것에 대해 큰 도덕적 문제가 없다고 여긴다.

산업기술 유출을 조사한 한 경찰관은 "산업기술 유출 범죄 피의자는 자신이 직접 만든 도면이나 소스 코드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를 가지고 이직하더라도 범죄가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범죄라고 하더라도 자신에게 일종의 지분이 있다고 여긴다. 마치 우리가 무단횡단을 할 때 큰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산업기술 유출 피의자도 자신의 행동이 법을 위반한 것일 뿐 범죄라고 할 정도로 큰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도체

피해 입고도 공개 꺼리는 문화

산업 간첩 활동으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크지만, 침투자가 비밀리에 활동하기 때문에 피해 사실을 공개하기 어렵다. 기업은 여러 이유로 피해를 공개하지 않으며, 특히 경영진은 주주와 고객의 신뢰를 잃을까 우려해 이를 꺼린다. 피해를 공개하면 추가 정보 공개나 법적 절차가 요구될 수 있으며, 경쟁사나 외국 정부를 비난하기 어려운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2023년 중국 향 초전도체 기술 유출 의혹을 받는 A기업과 디스플레이 기술 유출에 연관된 B기업은 주가가 5~10% 하락했다. 이처럼 피해 사실 공개는 기업의 명성과 주가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 경영진은 이를 은폐하거나 지연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 /연합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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