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감사 결과 드러난 문제들 점입가경
감사원이 지난달 27일 선관위 감사 결과를 공개하자 대다수 언론은 ‘세습 채용’과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의 ‘세컨폰’ 문제를 집중 부각했다. 그런데 감사 결과 드러난 문제점 가운데 심각한 부분은 한둘이 아니었다.
"중앙선관위가 절도, 상해 등 범죄를 저지른 선관위 직원에 대해 징계 절차를 밟지 않고 구두 주의나 경고 등 솜방망이 처분을 일삼은 사실이 드러났다"고 동아일보 등이 전했다. 감사 결과를 보면, 선관위 직원이 저지른 범죄는 36건이었다. 이중 13건에 대해 선관위는 징계를 하지 않고 구두로 주의·경고 처분만 내렸다.
전남 선관위는 직원이 상해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지만 구두 경고 처분만 했고, 광주 선관위는 직원이 교통사고 상해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음에도 ‘안전운행 촉구’라는 경고만 했다. 경기 선관위의 한 직원은 절도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때 경기 선관위는 구두 경고만 했다. 그런데 이 직원은 4개월 뒤 또 절도를 저질러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경기 선관위는 "해당 직원은 경기 선관위원장 표창을 받았다"며 견책 처분만 했다.
우리나라 모든 공무원에게 적용되는 대통령 훈련 ‘공무원 인사규정’에 따르면, 범죄를 저지른 공무원은 사법기관에서 기소유예 등의 처분을 받아도 소속 기관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별도 징계를 받아야 한다. 이때 징계 수위는 견책이나 감봉 이상이다.
감사원이 이런 문제를 지적하자 선관위는 스스로 ‘헌법기관’이라고 칭하며 "일반 공무원과는 다른 규정을 적용 받을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고 한다. 감사원은 2019년부터 선관위에 자체 인사 규정 개정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2023년 대규모 부정채용 사건이 터진 뒤 같은 해 4월 내부 인사 규정을 개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아니었다. 선관위 공무원 규칙 제2조 4항 "행정부 소속 공무원에 관한 규정을 준용한다"를 "준용할 수 있다"로 바꿔 공무원 인사규정을 무시할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놓고 감사원 요구에 따른 것처럼 행세한 것이 적발됐다.
선관위는 2013~2023년 사이 전국 선관위에서 실시한 291회 경력채용에서 878건의 규정 위반을 찾아내는 등 선관위의 모든 채용이 법령 위반으로 드러났음에도 "헌법기관인 선관위는 일반 공무원과 다른 규정을 적용 받을 필요가 있다"며 "행정부 소속 공무원에 관한 규정을 준용할지 여부는 선관위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 공개 이후 블라인드, 디시인사이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선관위 실제 내부 상황에 대한 폭로가 나오고 있다. 선관위에서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했다는 네티즌은 "정말 아무 것도 하는 게 없다"고 주장했다.
지방 선관위에서 근무했다는 이 네티즌에 따르면 출근한 뒤 부족한 잠을 잔다. 점심을 먹고 와서는 청사 내 조용한 곳에서 낮잠을 자고, 오후 근무 시간이 끝날 때쯤이면 딴 일을 하다 간단히 청소하고 퇴근한다. 실제 근무시간은 하루 1시간도 안 된다고. 게다가 선관위가 바빠지는 선거철이 되면 적지 않은 선관위 직원들이 휴가를 쓰거나 휴직계를 낸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지방 공무원이라고 밝힌 네티즌은 "선거철이 돼도 선관위는 일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선거 벽보 업무, 선거 홍보물 관리 및 발송, 선거명부 작성, 선거일 투표소 설치 및 정리, 투표소 참관 및 사무요원 섭외, 선거 및 후보자 벽보 부착 인원 모집을 모두 지방 공무원에게 시킨다는 것이다. 그는 "선관위 직원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선거철이 되면 돌아다니면서 지방 공무원들이 하는 업무 지적질이 전부"라고 폭로했다.
우리나라 선관위 직원은 약 3000명이다. 유권자 수 2억 4000만 명인 미국 선관위 직원이 300여 명, 유권자 9억 6900만 명인 인도 선관위 직원이 550명인 것과도 비교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