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기
홍승기

"법원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확고했더라면 감히 그런 일이 있었을까요?" 얼마 전 퇴임한 윤준 서울고등법원 원장의 퇴임사 중 한 대목이란다.

서부지방법원 사태로 청년들이 무더기로 구속됐다. 한국법학교수회는 청년들을 ‘폭도’로 단정했고, 판사들은 ‘엄벌’을 외쳤다. 윤준 전 원장의 인터뷰 제목은 "사법 신뢰 무너져 …법원 난입, 법원도 스스로 돌아봐야." 탄핵 국면에서 이른바 정통언론이 궤멸했다고 시끄럽더니 그래도 이런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조선일보, 2월 13일자).

윤준 전 원장의 부친은 윤관 전 대법원장이다. 주위에서는 부친이 대법원장을 해서 대법관이 못되었다고 평한다. 김능환 대법관이 파기환송해 한·일관계에 치명상을 입혔던 징용배상 사건 1심 판결을 윤준 판사가 썼었다. 논리정연하고 충실한 하급심 판결을 대법원이 굳이 뒤집어서 대형 사고가 났다.

박근혜 탄핵 무렵 이른바 ‘법조농단’으로 엘리트 법관들이 대거 법원을 떠났다. 피고인이 되어 형사법정에서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준 전 원장은 대한변협이 그들의 변호사 등록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염려가 되어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고 해명을 했다.

윤준 전 원장은 ‘일부 국민은 청년들이 법원에 쳐들어갈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공수처의 불법 체포영장 청구에 서부지방법원이 합세해 현직 대통령을 독방에 가뒀다. 당연히 먼저 처리해야 할 한덕수 총리의 권한쟁의 사건을 뒤로 미뤘다.

5년간이나 늘어진 입시비리 사건 재판 덕분에 조국은 꽤 오래 국회의원 놀이를 즐겼다. 의혹투성이 인생에 빛나는 윤미향은 늠름하게 국회의원 임기를 마쳤다. 대통령의 직접신문조차 제한하며 폭주 중인 헌법재판소 발(發) 무법의 향연(饗宴)까지 더해 보면, 서부지방법원 사태는 다분히 자초위난(自招危難)이다.

윤준 전 원장의 부친 윤관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실에 걸려 있던 대통령 사진을 내리고 대통령 해외순방 때 환송 나가던 관행도 없앴다고 한다.

2018년 9월 13일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장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법조농단 의혹규명’을 주문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줄줄이 무죄판결이 났다. 법원은 열혈청년들을 무더기로 구속하고 부끄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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