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부터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듄’에 이르기까지 공상과학 영화 속에는 다양한 행성의 지적생명체들이 한데 어우러져 살아간다. 오랜 노력에도 지적생명체는커녕 살아 있는 박테리아조차 찾지 못한 상황에서 이는 글자 그대로 ‘공상’일 뿐이다. 하지만 언젠가 이런 영화 속 배경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지적생명체로의 진화가 생각만큼 어렵지 않으며, 우주에는 많은 지적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것이다.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제니퍼 맥컬레이디 교수팀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드’에 게재된 이번 연구에서 "인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지구와 다른 행성들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진화의 결과물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그동안 과학계의 정설로 인정받아온 학설인 ‘어려운 발걸음(hard-steps)’을 정면 반박하는 것으로, 인류의 기원과 우주에서의 위치를 이해하려는 연구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어려운 발걸음’은 1983년 호주의 이론 물리학자 브랜든 카터가 처음 제시했으며, 생물학에 확고하게 뿌리를 두고 인류의 진화를 설명한다.
이 이론의 핵심은 ‘우연의 연속’에 있다. 지구 환경이 생명체에 우호적일 바로 그 시기에 생명의 씨앗이 뿌려진 것부터 하나의 세포가 다세포생물, 어류, 동물, 영장류를 거쳐 인류로 진화하기까지 헤아릴 수도 없는 우연과 행운이 겹쳐 인류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카터는 이들 온갖 우연 중 단 하나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인류는 없었을 것이라 주장한다.
태양이 형성되고 지구에서 현생인류가 등장하는데 무려 50억년이 걸린 점도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50억년은 태양 수명의 절반에 해당한다. 즉, 이 이론에 따르면 지적생명체는 특정한 순서대로 많은 복잡한 이벤트가 일어나야 가능하며, 인류는 우주 전체에서도 0%에 수렴하는 확률을 뚫은 극히 희귀한 진화론적 성공사례다.
하지만 맥컬레이디 교수팀은 이번에 제시한 진화모델에서 복잡한 생명체로의 진화는 운보다는 생명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의 산물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애당초 지구는 모든 생명에게 적대적 공간이었지만 최초의 생명이 잉태된 후 대기에 산소를 공급하는 등 지구 환경과 상호작용하며 진화의 시계를 빠르게 흐르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연구진은 지구상에 남아 있는 화석과 유전자 기록이 매우 불완전해 인류로의 진화 열차가 한번만 출발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고 강조한다. 단 한번의 우연들이 기적처럼 이어진 게 아니라 많은 도전 끝에 진화에 성공했을 수 있다는 얘기다.
논문의 제1저자인 대니얼 밀스 박사후연구원은 "어렵거나 가능성이 낮은 생물학적 혁신도 환경이 허락하면 빠르게 일어날 수 있다"며 "인간은 태양과 지구의 역사에서 ‘늦게’ 진화한 게 아니라 조건이 갖춰진 ‘정시’에 진화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에 맥컬레이디 교수팀은 지적생명체의 진화를 설명할 때 ‘어려운 발걸음’에서 지목한 항성(태양)의 수명이 아닌 행성(지구)의 지질학적 시간을 척도로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지구의 환경이 인류에 적합하게 바뀐 시점은 약 5억년 전 대기 중 산소가 두 번째로 상승한 이후며, 인류로의 진화에는 50억년이 아닌 5억년이 걸렸다.
이번 연구는 인류라는 종의 진화에 수십억 년이 걸린 이유를 이해하는 대안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지구보다 빠르게 생명에 우호적 조건을 달성한 행성이라면 나이가 어려도 지적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적 배경을 제시한다.
이는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직접적 증거는 아니지만 그들이 어디에, 언제 존재할 수 있는지 예측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결과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연구진은 후속연구를 통해 ‘어려운 발걸음’의 대체 모델로서 확고한 이론적 틀을 마련해나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외계 행성의 대기를 탐색해 산소의 흔적과 생명체 진화의 상관관계를 분석하고, 낮은 산소 농도나 고온 같은 특정 환경조건에서 단세포·다세포 생물의 생태 연구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