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밀리고 비트코인에 치여 투자자예탁금 50조원 밑돌아
코스피·코스닥 거래대금이 가상자산 거래대금의 절반 수준
나스닥 25% 오를 동안 코스피 6% 하락
국내 주식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 올해 1월만 해도 20조원 수준이었던 코스피·코스닥 일평균 거래대금이 이달 들어 15조원대로 떨어졌다. 미국 대선 이후 차기 트럼프 행정부의 수혜주를 찾는 ‘트럼프 트레이드’가 활발히 이뤄졌지만, 하루 거래대금은 오히려 10조원 수준으로 추락했다. 12일 국내 가상자산 거래대금 21조원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또 국내 증시 주식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50조 원을 밑도는 등 자금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시장 자체가 작아진 것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시 대기 자금인 투자자예탁금은 연초 59조4948억원에서 지난 8일 49조9023억원으로 10조원가량 줄었다. 연초 정부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면서 상승세를 탔던 국내 증시는 2분기를 정점으로 하향 조정된 기업 이익과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에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전 세계 자금이 달러와 미국 증시, 가상화폐 시장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국내 증시에서도 투자자들의 자금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장기간 박스권을 갇힌 코스피와 강달러를 의식한 투자자들의 증시 이탈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3개월간 국내 주식시장에서 15조원 가량을 순매도 했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대장주’ 삼성전자만 16조4090억원 가량 순매도했다. 이 영향으로 미국 증시가 ‘트럼프 랠리’를 펼치는 동안 코스피 2500선, 코스닥 700선이 깨졌다. 또 소나기를 맞고 있는 삼성전자는 10만원을 바라보다가 5만원선을 위협받는 등 거의 반토막 난 상태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국내 증시에 대한 회의론이 급부상 중이다. 투자자들은 물론 전문가들 조차 "당분간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국내 증시가 벼랑에 섰다.
세계의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이같은 흐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트럼프2기 행정부가 해외 기업에 대해서는 관세 강화로 장벽을 세우고, 미국 기업에게는 규제완화와 감세 정책을 펼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은 이미 국내 증시에서 떠나 미국 증시와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로 이동중이다. 금융투자세 논란, 잇단 경영권 분쟁과 그에 따른 주가 급등락 등 증시를 둘러싼 노이즈가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심리를 위축시켰다. 이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국내 증시의 낮은 수익률이다. 연초 이후 세계 각국 주가지수 상승률을 보면 미국 다우존스30평균지수 16.51%,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 25.45%, 나스닥지수 28.45%, 일본 니케이225지수 16.55%, 중국상해종합지수 15.03%, 홍콩항셍H지수 23.55% 등이다.
이에 반해 코스피는 6.50%, 코스닥은 18.01% 각각 하락했다. 이수정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일반적으로 ‘곡소리’가 나면 매수 시그널이지만 국내 증시에 팽배한 ‘국내증시 패배주의’로 인해 반등 타이밍이 지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국내 증시에 대한 신뢰 저하가 지수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은 국내 증시에서 미국 증시와 가상자산으로 옮겨가고 있다. 수년 전부터 국내 증시 투자의 대안으로 부상한 미국 증시로 향하는 자금 역시 증가세가 트럼프 당선 이후에 더욱 뚜렷하다.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주식 보관 금액은 지난 7일(결제일 기준) 처음으로 1000억 달러를 돌파해 1013억6571만 달러를 기록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1년 1월 이후 최대치다. 2022년 말 442억달러 수준에서 채 2년도 되지 않아 2배 이상으로 뛴 것이다. 지난해말 680억2349만달러와 비교하면 10개월만에 50% 가까이 늘어났다.
미국주식 매수·매도 결제건수도 2022년 말 869만8000여건에서 올해는 지난 12일까지 1046만9000여건으로 급증했다. 국내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시장에서 테슬라,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고 있다.
트럼프 당선 이후 가상자산 거래가 폭증하는 점도 국내 증시 위축에 한 몫하고 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으로 돈이 몰리면서 코인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12일 가상자산 정보 사이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의 지난 24시간 총거래대금은 21조5823억원에 이른다. 가상자산 거래 규모는 전날 코스피 거래대금(12조8480억원), 코스닥 거래대금(7조4123억원)을 넘어섰다. 가격도 급등세를 타고 있다. 미국 가상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에서 1비트코인은 12일 오전 10시 45분(현지시각) 현재 8만8000달러선에서 거래됐다. 원화로는 1억2000만원 수준이다.
국내 증시에 대해서는 ‘저가 매수’ 기회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있다. 최근 국내 증시의 낙폭이 컸던 만큼 상황이 안정될 경우 반등 기회를 노려볼 수 있다는 전망이다. 양해정 DS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 시장은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니 차기 정부 기대감으로 상승 중이지만 한국은 수요시장의 정책 불확실성이 투자 시계를 흐리게 하고 있다"며 "트럼프 1기 시기에도 정부가 구성되고 정책 윤곽이 잡히면서 한국 시장은 안정을 찾았다. 트럼프 트레이드가 멈추면 금리 인하, 달러화 변화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