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31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했다. 11월 5일 미국 대선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 정상각이 아닌 고각 발사다. 면밀 검토가 필요하지만, 러시아 신기술을 도입해 실험발사를 했다면 사전에 암시를 주는 메시지 정도는 있었을 것이다. 메시지가 없고 고각 발사를 한 것은 일단 미 대선 정국 개입으로 읽힌다.

그렇다고 미세한 암시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방위성은 "탄도미사일 비행시간이 1시간 26분으로 지금까지 북한이 발사한 탄도미사일 중 가장 길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 다음번 ICBM 발사 때는 정상각에 가깝게, 또는 정상각으로 쏠 수도 있다는 메시지는 담긴 셈이다.

김정은이 미 대선 정국에 개입하고 싶은 대목은, 해리스와 트럼프에게 ‘한반도는 우리(북)와 미국간 분쟁지역’이란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미 대통령 선거는 미국 시민과 언론은 물론 전 세계의 관심이 쏠린 거대 이벤트다. 김정은은 이 황금 시기를 이용해 몸값을 최대한 부풀리면서, 한반도 군사긴장 고조를 매개로 주한미군 철수 등 미국의 양보를 요구하려는 전략이다.

김정은의 요구는 물론 관철되기 어렵다. 김정은과 남한 내 친·종북 세력이 아무리 떠들어도 주한미군 주둔 여부는 한·미가 결정한다. 오히려 문제는 북한의 전략적 연속성 여부다. 김정은이 러시아와 군사동맹을 맺고 북한군을 파병한 조건에서, 앞으로도 미국과의 관계를 자신의 전략대로 끌고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핵·미사일을 매개로 한반도에 군사긴장을 일으키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끌어내 이익을 챙겨왔다. 김정은은 이같은 협박 방식이 계속 통할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러·북 군사동맹 체결과 러시아 파병으로 인해 한반도 정세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북한의 ‘선(先) 핵·미사일 위협-후(後) 미북 협상’이라는 기존 사이클이 계속 작동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한·미 국방장관은 30일(현지시각) 북한의 파병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한·미 작전계획에 북핵 대응 시나리오를 반영키로 했다. 만약 김정은의 착각 때문에 향후 한반도에 심각한 군사긴장이 발생한다면, 이는 북한정권 몰락을 재촉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도 유념할 대목이다.

저작권자 © 자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