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세계 최초로 모든 혈액형에 투여할 수 있는 ‘인공 혈액’을 개발했다.
이 인공 혈액은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 속 헤모글로빈만을 추출해 인공막으로 감싼 캡슐 형태로 이루어져 있으며, 혈액형 항원이 없어 누구에게나 투여할 수 있다. 최대 4주 보관이 가능한 기존 혈액과 달리 실온에서 2년, 냉장 보관 시에는 5년까지도 보관이 가능하다.
대한민국 헌혈 인구는 10대, 20대에 집중돼 있다. 저출산으로 헌혈 인구 역시 감소하고 있으니 참 탐나는 기술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의 인공 혈액이 내년 임상시험을 거쳐 목표인 2030년 실용화되면, 전 세계 의료 체계는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이런 혈액을 만들 수 없을까? 저런 혁신적인 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할 대한민국 과학계의 상황은 어떠할까.
우리 과학계는 인재 유출 문제에 더해 연구기관의 리더십 공백으로 그야말로 처참한 일들을 겪고 있다. 일례로 최고과학인상까지 받은 이기명 고등과학원 부원장은 양자역학 등의 분야에서 많은 연구 성과를 낸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물리학자다. 그런 그가 올해 여름 중국 베이징 수리과학 및 응용연구소(BIMSA)로 자리를 옮긴다. 국내 연구기관에서는 65세로 정년을 맞이한 그를 받아 주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촌각을 다투는 과학기술 혁신이 국가 연구기관의 수장이 공석이라는 이유로 중요한 의사 결정이 미뤄지는 일 또한 빈번하다. 2020년 시작한 ‘꿈의 현미경’ 사업은 한창 속도를 내야 할 사업 초기 주관기관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원장의 공백으로 기존 계획보다 13개월 정도 지연됐다. 2019~2023년 5년 간 기관장의 임기가 종료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새 기관장을 맞이할 때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무려 154일, 평균 5개월 정도의 리더십 공백 사태가 이어진 셈이다.
우리가 뒤처지는 동안 중국을 필두로 경쟁국들은 기초과학 인재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정년 없는 연구·교수직을 운영하며 연구자의 풀(pool)을 두텁게 하고, 학문의 맥이 끊어지지 않도록 유지한다. 또한 자국으로 유입되는 인재에게는 자유로운 연구 환경과 몇 배의 연구비 지원 등 파격적인 조건도 마다하지 않고 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은 67년 ‘기술 혁신’, 69년 ‘생활의 과학화’를 신년 휘호로 냈을 만큼 과학기술 진흥에 공을 들였다. 그는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도 100년 앞을 내다보고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세우고, 해외에 나가있는 과학자들을 ‘모셔오는’ 일에 공을 들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어렵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을 우리 손으로 허물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우리 인재들의 소위 ‘두뇌 유출’이 가속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미 미국을 넘어섰다고 평가받는 중국이나 경쟁국들에 우리 인재들을 빼앗기지 않도록, 정부와 과학계의 과감한 대책이 필요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