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명학
도명학

남한에는 탈북민들 보기에 놀라운 일들이 많다. 치솟는 기름값 때문에 못 살겠다고 투덜대면서도 꽃구경이요, 단풍 구경이요, 하면서 승벽(勝癖) 내기라도 하듯 떠난다. 주말이면 그런 차들로 도로가 주차장처럼 되어버리는 것도 놀랍고, 일은 저 혼자 다 하는 것처럼 늘 바쁘다고 사람이 비싼 등산복을 사 입고 빈번히 산에 가는 것도 놀랍다. 이유를 물어보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란다.

탈북민들 경우엔 대개 누군가에게 이끌려서 혹은 산악회를 곁들인 행사여서 어쩔 수 없이 산에 가지 스스로 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상에 올라도 야호! 소리를 지를 만큼 상쾌함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무의미한 일에 힘만 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북에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 때문이다. 꿈을 꿔도 고향이 자주 보인다. 대개 악몽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도 불쑥 떠오르는 가족 생각이 목에 걸린다.

필자와 고향이 같은 한 친구는 등산 가자는 말만 들으면 질색한다. 자기는 산이라는 말만 들어도 몸에 알러지가 생긴다고 한다. 그는 북한에 살 때 먹고 살기 위해 나무 하러 다니고 약초 캐고 풀을 뜯어 양식을 보충하느라 하도 산에 많이 올라가 질려버렸다는 것이다.

운동도 안 한다. 그 시간이면 일이나 더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밥과 김치 하나로 살다시피 하면서도 꼬박꼬박 돈을 모아 북에 보냈다. 그에게 노래방, 유희시설 같은 곳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자고 권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어쩌다 억지로 끌려가면 겨우 노래 한두 곡 한다는 것이 쓸쓸함, 고독, 비애 같은 어두운 노래뿐이다.

그러던 그가 달라진 건 북한의 가족이 전부 압록강을 건너 3국에서 한국대사관 보호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부터다. 그가 처음으로 제 편에서 먼저 도봉산에 가서 산행도 하고 막걸리도 마시자고 제안해 함께 갔다. 정상에 올라 환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아주 딴사람이 된 것 같았다.

행복의 본거지라 할 수 있는 가족을 잃은 사람의 상처는 일상에서 쌓이는 스트레스와 다르다. 운동이나 유희로 해소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따뜻한 인정미와 아픔을 공유해주는 사회적 환경이 먼저다. 그러나 멀리 아프리카의 빈곤에는 관심을 보이면서도 정작 옆에 있는 동족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다. 탈북민을 "먼저 온 통일"이라고 부를 때면 슬프게도 "분단의 피조물"이라는 말이 함께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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