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립금 2년 앞서 2055년 고갈...미래세대 소득 30% 부담 추산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감소, 급속한 고령화가 한국 사회의 공동체 존립을 흔드는 문제로 부상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노령인구가 급증하면 생산력과 소비가 감퇴해 경제는 뒷걸음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특히 노인복지 지출은 급증하는데 세금 내는 인구는 쪼그라들어 사회보험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진다.
역대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많은 대책을 내놓았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2006년 이후 지난해까지 쏟아부은 예산만 225조원에 달한다. 그럼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고, 오히려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국민연금 역시 지속 가능성에 ‘경고등’이 들어온지 오래다.낙관적 전망으로 꼽히는 지난 2018년 4차 재정추계에 따르더라도 2057년이면 국민연금의 적립기금은 바닥난다.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의 추계에 따르면 적립기금이 소진되는 시기는 이보다 2년 이른 2055년이다.
일부에서는 국민연금이 재정평가 기간으로 삼는 70년 후, 즉 2088년에는 누적 적자가 1경7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대로 놔두면 재정적으로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제도라는 것이다.
적립기금이 소진되면 노령인구에게 주는 국민연금을 현재의 청년층과 미래세대의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고령화 수준을 고려할 때 청년층과 미래세대는 국민연금 보험료로 소득의 30%를 부담해야 할지 모른다는 추산도 나온다.
특히 대부분의 전문가는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골든타임’을 놓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한국전쟁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1955~63년) 723만명이 차기 정부 임기 내에 대부분 은퇴하고, 국민연금 가입자에서 수급자로 바뀌기 때문이다.
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행 보험료율 9%에 소득대체율 40% 구조로 된 ‘저부담·고급여’ 상황이 지속되면 국민연금은 2042년 적자로 돌아선다. 소득대체율은 생애 평균소득 대비 노후 연금수령액 비중을 말하며, 저부담·고급여는 가입자가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국민연금을 받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아니면 더 오래 가입하도록 하거나 더 늦게 받도록 하고, 나아가 급여 수준 역시 낮추는 식으로 수지 균형을 맞춰야 한다.
하지만 소득대체율은 두 차례에 걸쳐 70%에서 40% 수준으로 낮췄다. 연금수령 나이도 60세에서 65세로 늦췄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이나 의무가입 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것 이외에는 남아 있는 카드가 없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갈등이 심화하기 전에 지금의 재정 상태를 국민에게 제대로 알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소득대체율은 현행 수준을 유지하되 보험료는 12%까지 올려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 소득의 9%인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영국(25.8%),독일(18.7%),일본(17.8%),미국(13.0%) 등 주요 선진국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당초 제도 시행 첫 해인 1988년 3%에서 시작했지만 5년에 3%포인트씩 두 차례 올라 1998년 9%가 됐는데, 이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보험료를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다. 하지만 정치권이 개혁을 외면하면서 번번히 무산됐다. 장기적으로 부담은 늘고 혜택은 줄어드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지는데 대한 국민의 불안감과 거부감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8년 4차 재정계산을 통해 국민연금 개혁에 시동을 거는 듯했다. 하지만 재정 안정과 지속 가능성보다는 노후 소득보장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국민연금 개편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사실상 멈춘 상태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역시 이에 관한 공약 제시는 물론 별다른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려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이처럼 정치권이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방안을 찾지 않고 시한폭탄 돌리기로 일관하면 국민연금 위기는 증폭될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