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철학자 베이컨이 경험주의 철학을 제시한 이래 귀납적 논증은 자연현상은 물론이고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강력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귀납’은 아무리 많은 사례가 축적되더라도 ‘분명한 참’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과거 유럽인들은 ‘고니(Swan)는 희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17세기 말 호주에서 흑조(Black Swan)가 발견되자, 기존의 견해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귀납적 논증의 한계를 보여 준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북한 연구 역시 귀납적 방식에 의존하고 있다. 문제는 폐쇄 사회라는 북한 체제의 특성으로 인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정보’를 획득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폴 셀바 전(前) 미국 합참 차장은 다음과 같이 발언한 바 있다. "북한이 위협적인 건 불투명(opaque)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현재 북한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매우 작은 정보 조각들을 모아 엮은 결과입니다."
이처럼 취약한 정보환경은 필연적으로 대북 정보 판단 및 정책 수립에 오류를 가져온다. 첫째, 조각 첩보를 엮어 생산되는 정보는 대부분이 단편 정보로서, 사용자에게 사전적(辭典的)인 지식을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전략적 판단에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는 데는 대단히 미흡하다는 것이다. 정책결정자들은 이렇게 습득한 지식 -당사자는 객관적 지식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편견에 불과하다-에 따라 대북정책을 수립하는 경향이 많다. MB정부의「비핵 개방 3000」,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는 모두 이런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책은 어떤 결과물도 없이 ‘항상 시작일 뿐(semper initium)’으로 끝났다.
둘째, ‘정보가 없으면, 사건 자체도 없다’라고 간주해 버린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 수중 세력의 대남 침투이다. 북한 잠수함들이 ‘은밀성’을 방패로 우리 영해를 안방처럼 들락거렸음이 분명한데도 이를 한 번도 포착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북한의 잠수함이 대한민국에 침투한 적은 한 번도 없게 된 것이다. 안보 측면에서 볼 때 이는 가용한 첩보의 부족보다도 훨씬 심각한 문제이다. 예기치 않은 위협이 발생했을 때의 충격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 사항을 보완하기 위해서는「직소 퍼즐」맞추기 방식을 원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직소 퍼즐은 다양한 모양으로 잘려있는 조각들을 맞추어 그림을 완성하는 놀이도구인데, 흩어져 있는 조각들을 손쉽게 맞추는 방법은 우선 테두리 부분(전체 집합)을 완성한 뒤에 나머지 조각(부분 집합)들을 맞춰 넣는 것이다. 일종의 연역적 사고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방식을 북한을 들여다보는 데 활용하면 다음 두 가지의 장점이 있다.
첫째, 각각의 상황이 체제 전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 비핵화 의지는 있는가?’라는 논쟁적 질문에 대해 ‘핵 개발’과 ‘정상회담 호응’이라는 두 가지 사건의 상대적 지위를 정리함으로써 명백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연구 대상의 중요성과 시급성 등을 고려하여 우선순위를 선정함으로써, 제한된 정보자산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더불어 신뢰성 높은 결과물도 거둘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북한을 알기 위해 모든 북한 주민의 이름을 파악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만, 유의할 것은 북한 연구의 주된 방법론은 어디까지나 귀납적이어야 하며, 직소 퍼즐 맞추기 방식(연역적 사고)은 보조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닝-크루거 효과’(무지할수록 더 강한 자신감을 가지는 인지 편향)의 함정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