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5년, 좌회전 정책이 부른 ‘탈선 경제’
① 마차로 말을 끌게 한 유사(類似) 성장이론, 소득주도성장
광주광역시 운암동 골목길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배훈천씨. 그는 지난 6월 광주 4·19혁명기념관 통일관에서 열린 만민토론회에서 비판 연설을 했다. 주제는 ‘문재인 정권의 경제정책과 호남의 현실’이다.
배씨는 "문재인 정부의 지지 기반인 광주에서 현지인의 입으로 들려 주는 게 우리 자식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유익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아젠다인 소득주도성장의 문제점을 현장에서 느낀대로 세세하게 지적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무식·무능·무대뽀로 규정했다. 귀결은 ‘대재앙’이다.
배씨는 "최저임금을 34.8% 인상해놓으니 어떻게 된 줄 아느냐"고 반문하면서 "웬만해선 알바 안 쓴다. 알바를 쓰더라도 15시간 미만으로 경력이 있는 알바만 뽑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강남이란 구름 위에서 사는 자들이 개천에서 가재·붕어·개구리로 오손도손 살고 있는 자영업자와 서민들의 생태계를 순식간에 망가뜨려 버린 것"이라고 격분했다. 이어 "그나마 경제를 성장시켜 장사가 잘 된다면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도 작은 충격으로 그칠 수 있었을 텐데, 문재인 정부는 태생부터 경제성장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것이 서민들의 목소리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은 전혀 다르다. 지난 5월 취임 4주년 연설에서 소득주도성장의 긍정 효과는 분명하다고 밝힌 것이다."시장의 충격을 염려하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고용 안전망과 사회 안전망이 강화되고, 분배 지표 역시 개선됐다"는 것이다.
◇ 돌팔이의 잘못된 처방전으로 식어가는 성장엔진
하지만 문 대통령의 말과 달리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은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 이는 돌팔이의 잘못된 처방전 탓인데, 소득주도성장론과 이를 기반으로 한 각종 정책이 그것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 소득이 늘어나면 소비도 살아나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골자다. 이 이론은 마르크스의 영향을 받은 임금주도성장론을 베낀 것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면서 널리 알려졌지만 개념 자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 수면 위로 부상했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성장 담론인 ‘낙수효과(落水效果)’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낙수효과는 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물론 경제성장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대기업이 잇따라 도산하는 등 벼랑에 몰리자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낙수효과 자체를 부정하고 나섰다.대기업이 아닌 저소득층의 소득이 늘어야 성장한다는 것이다.특히 재벌 개혁을 강력히 주장, 사실상 반기업 정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는 셈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은 부경대 경제학과 교수였던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주창했고,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였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에 의해 설계됐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실현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 실업급여, 출산 유급휴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공공부문 고용 창출, 바우처 지급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일반적으로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대표적 지표는 경제성장률, 고용지표, 가계소득, 가계부채, 국가채무 등 다섯 가지다. 현재 이들 지표에는 모두 ‘경고등’이 들어온 상태인데, 소득주도성장의 ‘성적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 소득주도성장론은 근거도 실증도 없는 ‘부두 경제학’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국내외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근거도 실증도 없는 부두 경제학(Voodoo Economics)으로 취급한다.
무엇보다 근로자의 임금이 인상되면 당장 생산비용이 올라간다. 이는 기업의 이윤을 줄이는 것은 물론 제품의 가격을 밀어올려 수입품의 경쟁력만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임금 인상으로 부담을 느낀 기업은 국내 인력을 줄이고 싼 노동력을 찾아 외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길 수도 있다.
또한 소득이 증가한다는 것은 일정 기간 부가가치가 새롭게 창출돼야 한다. 특히 국민소득은 가계, 기업, 정부 등 모든 경제주체 소득의 합이다. 가계소득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기업소득이 감소하면 전체 국민소득은 증가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소득주도성장은 임금 인상을 통해 단지 분배의 몫만 이전시키는 것이다.
소비 역시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아니다. 경제시스템에서 소비의 역할은 자원 배분, 그리고 호황과 불황 등 경기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저축과 투자며, 이를 축적하려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경제성장은 공짜가 아니다.
더구나 임금이 10% 인상된다고 소비를 종전보다 10% 늘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금과 세금, 이자비용 등 다른 지출도 덩달아 늘기 때문이다. 반면 기업의 비용 부담은 정확히 10% 오르게 된다.
한국은 과거 고도 성장기에 매년 임금이 올랐다. 생산성 향상 때문이다. 임금을 인상한다고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을 통해 성장을 했기 때문에 임금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마차로 말을 끌게 한 유사(類似) 성장이론인 것이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임금이 인상되면 생산성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난다고 강변한다. 월급이 오른 근로자는 신바람이 나 일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근로자가 임금을 많이 주는 기업주에게 호의를 갖게 돼 ‘노동 투쟁’ 역시 사라지게 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무당 경제학에서 나올 법한 말이다. 경제효과와는 상관없이 현란한 미사여구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일종의 주술(呪術)이라는 것이다.
◇ 윤석열 "족보에도 없는 이론" VS 이재명 "양극화 개선"
이처럼 소득주도성장은 처음부터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했다. 또한 지극히 위험한 경제성장 모델이다. 당연히 이에 기반한 각종 정책들은 시장 왜곡만 불러올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소득주도성장 논란은 내년 대선(大選)으로 옮겨붙은 상태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지난 8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해 "경제학에서 족보도 없는 이론"이라고 맹비난했다. "이론적으로 맞아서가 아니라 자기네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특정 세력과 그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말로 포장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윤 후보는 "임금을 많이 주면 소비 성향이 늘어나서 총수요를 늘려 성장에 기여한다는 이야기인데,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임금을 많이 주면 기업에겐 그게 다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근로자의) 소비 수요가 약간 늘어도 기업 입장에서 투자 수요가 많이 줄어서 (결국) 사회적 총수요가 줄어든다"며 "이게 성장에 마이너스지 어떻게 플러스냐"고 반문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난 2019년 6월 자신이 주장하는 기본소득과 소득주도성장은 같은 취지를 담고 있다고 주장했다. 소득주도성장이 양극화를 약화(개선)시키는 등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후보는 특히 기본소득을 설계한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를 선거대책위원회 기본사회위원장으로 합류시켰다. 소득주도성장 옹호론자인 최 교수는 최근 직(職)에서 사퇴했다. 여성 외모 비교 논란을 일으켜 경질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부인하고 있다.
지금은 글로벌 경제 시대다. 단순히 한국 근로자의 임금만 인위적으로 올리는 것은 대외 교역 비중이 높은 한국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자해행위가 될 수 있다. 엉터리 ‘조타수’가 운행한 경제정책의 피해는 오롯이 서민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