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AI 경쟁력에 대한 국제적 평가는 ‘세계 3위’라는 긍정적 평가와 ‘10위권’이라는 현실적 평가가 공존한다. 영국 FDI 인텔리전스가 AI 분석 기관 아티피셜 애널리시스의 데이터를 인용한 2025년 9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AI 역량에서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이 평가는 세계 22개 선도 AI 모델에 한국의 LG AI 연구원이 개발한 ‘엑사원 4.0 32B’(19위)와 업스테이지의 ‘솔라 프로2’(20위)가 포함된 것을 근거로 한다. 미국(13개)과 중국(6개)을 제외하고 복수의 모델을 순위에 올린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또 미국 민간 연구단체 에포크(EPOCH)의 2024년 7월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은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모델 수 11개로 미국(64개)과 중국(42개)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했다.
반면 다수의 권위 있는 지수들은 한국의 종합적인 AI 경쟁력을 10위권 내외로 평가한다. 토터스 인텔리전스의 글로벌 AI 지수(2024년)은 한국을 6위로 평가했으며, 미국·중국·싱가포르 등 선도국과의 격차가 크다고 분석했다. 하버드대 벨퍼센터의 전략기술 지도(2025년)에 따르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9위로 평가된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가장 빠른 발전을 이룬 국가 중 하나지만, 민간 투자 부족과 인력난을 약점으로 지적했다. 일부 컨설팅 기업 보고서에서는 한국의 AI 기술 성숙도를 ‘2군’(second-tier) 또는 ‘마이너리그’로 분류하며, 상위 5개국에 포함되지 못한다고 평가한다.
한국의 가장 큰 강점은 AI 기술의 근간이 되는 하드웨어 경쟁력에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AI 가속기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차세대 AI 반도체인 PIM(Processing-in-Memory)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 CEO가 "한국은 AI 인프라 확충 속도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할 만큼, 강력한 ICT 인프라와 반도체 제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어 AI 생태계의 탄탄한 기반이 되고 있다.
한국은 AI 관련 특허 출원에서 세계적인 강자로, 2006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과 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구글, IBM을 능가하는 AI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은 2024년에만 6000건 이상 AI 특허를 출원하며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이러한 활발한 연구개발은 기술 자산 축적과 미래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AI 경쟁력의 핵심은 인재이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AI 전문가 7800명 이상이 부족한 상황이며, AI 인재 순유입은 OECD 38개국 중 35위에 그쳐 심각한 두뇌 유출을 겪고 있다.
AI 관련 학술 논문 발표 건수도 지난 10년간 약 6만8000여 건으로 세계 11위권에 머물러, 수십만 건을 발표하는 미국·중국과 큰 격차를 보인다. AI 관련 분야 박사 학위 취득자 중 여성 비율이 12%에 불과해 심각한 성별 불균형 문제도 미래 인력 확보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의 ‘AI 3대 강국’ 비전은 결코 불가능한 꿈은 아니지만, 수많은 도전을 극복해야 하는 목표다. 현재 한국은 일부 모델의 성능 면에서 세계 3위권의 잠재력을 보여주었으나, 인재·투자·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종합 경쟁력에서는 여전히 글로벌 톱10의 중상위권에 머물러 있다.
성공적인 도약을 위해서는 인재 중심 생태계의 구축, 민간 주도의 투자 활성화, 특정 산업에 AI를 접목하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차별화를 도모하고 글로벌 협력 강화를 통해서 글로벌 AI 거버넌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게 긴요하다.
지금 한국이 던져야 할 질문은 ‘언제 3강에 오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우리만의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여 글로벌 자본과 인재를 끌어들일 것인가’이다. 하드웨어라는 강력한 엔진을 기반으로 인재와 자본이라는 연료를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 확립이 ‘AI 3대 강국’으로 가는 유일한 지름길이다. 이 길로 들어설 수 있느냐가 미래 한국 AI를 결정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