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한 기술 기업에서 일하는 박모씨는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이직을 준비 중이다.
그는 최근 한 주 동안에만 5곳의 기업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똑같이 제시받은 조건이 있었다. "당신은 주 60시간 이상 일할 수 있는가?"였다. 자율주행차 기술 전공 박사인 그는 "소규모 스타트업부터 빅테크 기업까지 모두 주 60시간 이상 근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재명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는 근로시간 감축을 위한 주 4.5일제(주당 36시간) 도입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당장 주 4.5일제를 수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은 계속된다. 찬성하는 쪽은 근로시간을 단축해도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기업 등에서는 막대한 고용 비용 증가와 생산성 저하 문제 등을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분야의 국가 경쟁력 상실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의 기술 기업들, 특히 AI 분야 스타트업들은 중국의 ‘996 근무제’를 도입하고 있다. 이는 주 6일,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총 72시간에 달한다. 기업들은 AI 경쟁에서 글로벌 경쟁사들을 앞지르기 위해 이처럼 강도 높은 근무 일정을 수용하고 있다.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은 제미니(Gemini)와 딥마인드(DeepMind) 같은 AI 프로젝트 직원들에게 주 60시간 근무와 주 5일 출근을 권장하며 이를 "생산성의 최적점"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996 근무제는 2021년 법으로 금지됐음에도 기술 업계에 널리 퍼져 있다. 중국 노동법은 주당 44시간 근무를 제한하고 초과근무 수당을 의무화했지만, 많은 기업이 이를 무시해 직원들이 충분한 휴식 없이 주당 거의 72시간을 일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러한 관행은 흔한 일로, 2025년 첫 5개월 동안 중국인의 평균 주당 근로시간은 48.5시간으로 법정 한도를 초과했다.
AI 분야의 치열한 경쟁 환경은 혁신이 새로운 권력의 화폐로 여겨지는 미국 기술 산업에서 극단적인 근무 시간 채택으로 이어지고 있다. 적은 예산과 소규모 팀으로 운영되는 AI 스타트업에게 장시간 근무는 프로젝트를 유지하고 투자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필수 요소로 여겨진다. 일론 머스크·마크 저커버그 같은 기술 기업가들은 획기적인 혁신과 성장을 위해 집중력과 연장 근무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국의 주 4.5일 근무제 계획은 생산성 감소와 인건비 상승 가능성에 대한 우려에 직면해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단축 근무제 도입이 특히 제조업에서 생산성을 더욱 저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노동 생산성이 선진국에 뒤처질 때 기업의 경쟁력 약화는 필연적이다. 기업들은 단순히 법정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것은 기업 경쟁력을 약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2023년 한국 근로자의 시간당 GDP 생산성은 54.64달러로, 미국 근로자(97.05달러)의 절반 수준이며 독일이나 프랑스보다도 훨씬 낮았다. 같은 기간 한국 근로자의 노동 생산성은 OECD 36개국 중 22위에 그쳤다. 생산성 향상 없이는 선진국과의 소득 격차 해소가 어려움을 방증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AI 분야 대규모 투자를 통해 AI 세계 선도국이 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정부와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주 4.5일 근무제 도입을 추진함으로써 기업들의 우려가 깊어간다. 세계 경제를 선도하려는 미국·중국 등 주요 국가들 사이 기술 혁신 경쟁은 날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정부는 절반 수준의 생산성으로 두 배 가까이 일하는 상대를 이기겠다고 자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