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효식
엄효식

대한민국 방위산업이 방산수출 역사의 신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LIG넥스원·한국항공우주산업(KAI)·현대로템 등 빅4로 불리는 방산기업들은 지난 9월 기준으로 누적 영업이익 3조4928억 원을 달성했다.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2조6589억 원)을 이미 초과 달성한 것이고 남은 3개월 동안 실적을 더 높여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방산의 급성장 배경으로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두 가지를 언급하는데, 가성비와 신속한 납기 능력이다. 특히 신속한 납기는 글로벌 방산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휴전이후 지난 75년 동안 방위산업 현장과 연구실에서 진한 땀을 흘린 모든 임직원과 과학자들의 노고 덕분이다.

그동안 우리 방산업계는 군이 신규 무기체계 소요 결정을 하면 방위사업청이 국내 개발과 해외 도입 중 가장 효과적인 방안을 선택해왔다. 국내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 또는 기업중심의 연구개발로 구분됐다.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국내 연구개발에 너무도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글로벌 명품 자주포인 K9 경우 대략 1990년경 개발을 시작해서 2000년경 군에 전력화됐다. 약 10년이 걸렸는데, 다른 무기체계 개발과 비교하면 단기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KDDX 구축함 사업 경우 2010년경 개발이 시작됐지만, 15년이 지난 지금도 사업자 선정을 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게 현실이다.

최초 무기체계를 상상할 당시로부터 대략 10년이 지난 후 실물이 전장에 등장하다 보니 무기체계 획득기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수많은 연구와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뚜렷한 개선방안이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민간기업의 첨단기술 또는 제품을 즉시 도입하자는 취지에서 신속획득사업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 또한 실효성 있는 대안으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

모든 문제제기의 근본에는 ‘행정중심 관료주의’라는 씨앗과 열매가 존재하고 있으며, 반대편으로는 ‘방산비리’라는 검은 악마가 자리잡고 있다. 실제 2010년대는 ‘방산비리’라는 네 글자를 언론이나 대화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2024년 기준 18조 원의 막대한 국방예산이 방위력 개선비로 투입되고 있는데, 과거 입찰과 업체 선정 등 공식 과정에서 발생했던 비리와 부정행위는 공무원들을 위축되게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칫 범죄자로 연루되어 인생을 망칠 수 있게 된 공무원들이 비리 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업무절차를 더욱 세분화했다. 시간과 노력을 몇 배 더 투입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공무원들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전쟁을 통해 혜성같이 등장한 드론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교훈은 전장상황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면 결국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 2025) 기간 중 열린 ‘우크라이나전 교훈 드론-대드론’ 세미나에서 우크라이나의 유리 키릴리치(Yuriy Kyrylych) 박사는 "우크라이나에서는 2개월마다 새로운 무기체계가 등장하고, 2개월마다 새로운 전술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러시아군에게 질 수밖에 없다"고 발표한 바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나의 무기체계를 개발하고 전력화하는 데 10년 이상 투입되는 현실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결국 의사결정 과정을 단축해야 하는데, 여기에 올라타고 있는 공무원들의 관료주의를 개선할 수밖에 없다.

최근 미국의 헤그세스 전쟁부장관은 국립전쟁대학(National War College)에서 미국 무기체계 획득 시스템의 개선을 강조한 바 있다. ‘국방 획득 시스템을 전투 획득 시스템으로 전환, 장병들에게 긴급히 필요한 무기체계의 실전 배치 가속화’를 위해 전쟁부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개혁을 지시했다. 미 육군 역시 지난주 ‘장병들에게 더빨리 필요한 무기체계 공급을 하도록 획득절차를 혁명적으로 개선하겠다’(Army revolutionizes acquisition process to deliver warfighting capabilities faster)고 밝혔다.

우리도 무기체계 개발이 보다 신속히 진행될 수있도록 과도한 행정절차 등 관료주의를 개선하는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17일 새롭게 취임한 이용철 방위사업청장에게 기대를 갖게 된다. 이 청장은 방위사업 획득 절차를 혁명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2006년 방사청의 개청 주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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