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종묘 인근 과거 세운상가 부지 재개발을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문체부는 문화유산 보호를 이유로 개발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서울시는 주거 환경 개선과 발전을 강조한다. 이 문제는 법정에서 다퉈졌고 대법원은 행정의 예측 가능성과 재산권 행사의 정당성을 인정해 서울시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문체부는 대법원 판결에 불복하며 이 문제를 정쟁으로 끌어들였다. 정부 여당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당 지지율을 높이는 데 기여할 거라고 계산했을 터이다. 왜냐하면 대중의 감성은 언제나 ‘보호’에 방점이 찍힌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문체부의 대법원 판결 불복은 종묘의 조망권 보존이라는 공익적 명분에 근거한다. 문화재 보존은 물론 중요한 가치다. 그러나 공익이라는 명분하에 사법부 판결마저 깔아뭉개는 행위는 본말의 전도이자 시민의 미적(美的) 감각을 행정의 발 아래 두겠다는 오만한 태도이다. 문체부가 주장하는 조망권은 법치의 테두리 안에서 정당성을 가진다. 기본권이라 할지라도 그 권리는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만 인정된다. 헌법은 그것을 기본권의 내재적 한계라고 한다.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 갈등은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 갈등을 성공적으로 조정한 세계적 도시들의 사례를 보면 해법을 읽을 수 있다.
센트럴파크가 있는 뉴욕은 선택과 집중 전략을 택했다. 공원의 문화재급 건물과 경관을 고려해 빌딩 높이를 제한하는 한편 높일 수 있는 곳은 확실히 높여 스카이라인 질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핵심적 도구로 쓰인 게 ‘공중권 거래’와 ‘보호구역’ 설정이었다.
공중권이란 건물을 땅 위로 올릴 수 있는 권리로 땅뿐만 아니라 공중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예컨대 용적률이 100까지 허용됐는데 70만 사용했다면 나머지 30을 다른 지주로부터 사들여 개발할 수 있는 권리다. 그 권리를 이용해 개발이 제한된 지주는 공중권을 다른 개발자에게 팔아 피해를 보전할 수 있다. 오늘날 맨해튼의 다양한 높낮이의 스카이라인은 공중권 거래로 인한 결과물이다.
런던의 조망권 보호 제도(Protected View Corridors)도 참고해 볼만 하다. PVC는 조망 통로를 확보하는 제도로 요약될 수 있다. 시청이나 공원, 거리 등에서 문화재급 건물과 구조물 등이 잘 보이도록 시야를 확보하는 것으로 건물의 높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런던의 PVC는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뉘는데 주 뷰 보호와 보조 뷰 보호가 있다. 주 뷰는 템즈 강, 밀레니엄 브리지, 런던 시청 주변 등 지정된 뷰 라인 내에서 건축허가를 내줄 때 건물 높이와 외관을 심사한다. 보조 뷰 구역에서는 보존하고자 하는 건물과 구조물이 주변 건물에 묻히지 않도록 건물 높이에 제한을 둔다.
PVC가 특별한 건 거리의 특성과 위치에 따라 건물의 허용 높이를 철저히 계산하고 있다는 데 있다. 예컨대 특정 지점에서 바라볼 때 성당 돔까지 시야 각도가 5도 이상 확보되어야 한다든가, 신축 건물이 확보하고자 하는 시야선 위로 올라서지 못하게 제한을 가한다. 또한 빌딩 높이를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게 아니라 각각의 뷰 라인마다 맞춤형 분석을 통해 건물 각각의 높이에 상한선을 둔다.
PVC는 뉴욕의 공중권 거래와 달리 조망권 보호가 중심이지만 두 제도의 목표는 한결같다. 그것은 역사적 건물을 보호함과 동시에 도시 개발을 촉진하는 것이다.
서울시가 내놓은 재개발 계획은 뉴욕과 런던의 방식이 혼합된 것으로 보인다. 공원을 만들고 각 블록의 개방 공간을 연결하여 보행자 친화적이고 녹음이 있는 도심을 조성하려는 구상이다. 오늘날 도시 경쟁력은 경관에 달려있고, 규제의 행정은 경직된 관료주의적 미감(美感)에 다름 아니다. 서울은 과거 현재 미래가 중첩된 미적인 공간이며 당대의 건축미와 기술이 담긴 문화적 산물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